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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自點請推考。” 答曰: “此賊形勢, 似無卸下於義州之理, 而調發農軍, 奔走於無糧之地, 似非得計。 元帥之不輕動, 不無意見也, 且遮截投虜之路, 實今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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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戌 / 天朝都督吳安邦、周文郁, 追賊船到彌串。 吳安邦所管船一百艘、兵三千二百人; 周文郁船八十艘、兵二千五百人。 太監侯用以監軍來, 船十二艘、內丁三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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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癸未 / 孔、耿兩賊移屯, 與虜兵相連結陣, 天兵退向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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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己丑 / 胡差龍骨大、彔只入京。 句管所啓曰: “臣等入見金差, 問其出來之由, 則答曰: ‘我國受天之祐, 阿奴、車訖羅兩國歸順者甚多, 又毛兵投降者, 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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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問安官鄭維城, 入椵島, 劉興治高張紅旗, 書以奇功大捷四字, 受軍將拜賀後, 接見問安官。 興治曰: “島中繼餉無路,未免阻飢。 不得已曾送物貨, 請貿糧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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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庚午 / 初, 平安監司金時讓馳啓言: “劉興治欽差之說, 出於島中, 而勑命則實未下。 自今中外文書, 竝宜勿用欽差二字。” 備局亦以爲: “宜從時讓之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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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子 / 孔有德等導虜兵, 潛襲旅順, 殺都督黃龍。 椵島聞旅順敗, 大懼, 備舟楫, 荷擔而立。 都督周文郁, 退住鹿島; 孫、楊兩都督, 退住長山。 副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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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椵島差官李豹義, 持劉興治票文, 率降㺚、獵狗, 馳到義州府, 責出廚供, 侵擾村閻。 府尹以爲, 觀察使時無供饋之令, 爾雖來, 此不可徑先給餉。 豹義大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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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毛都督於 島中, 接置客商, 一年收稅不啻累巨萬云。 若使都督, 不盡入己, 其補軍餉, 豈淺鮮哉? 我國則京外商人, 雲集椵島, 齎持銀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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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劉副揔接伴使李景憲, 入往椵島, 興治行見官禮, 仍受禮單。 翌日親到景憲館所, 回謝畢, 設宴待之曰: “所輸軍糧,若於氷凍前, 不能畢運, 則當縱軍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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