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고문서 76,834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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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曾請面對, 今欲何言?” 李曙對曰: “臣旣受命矣, 臣行當與鄭忠信相先後。 忠信先行, 則臣可隨後, 而必須相議於本道。 且漢人遍滿西土, 機事恐泄,
    출처전거仁祖實錄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乙亥 / 平安監司金時讓馳啓曰: “淸川以北被兵之後, 無弓矢、器械。 椵島舟師, 若遇順風, 則不過一日, 可到三縣, 而安州戍兵, 亦僅四千, 更無調發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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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今此中江開市, 已定日期, 而京中商賈, 絶無入往者云, 胡人不無發怒之端。 今差解事算員, 齎紙地、胡椒、丹木、靑布等物, 前往開市處, 換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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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乙亥 / 平安監司金時讓馳啓曰: “淸川以北被兵之後, 無弓矢、器械。 椵島舟師, 若遇順風, 則不過一日, 可到三縣, 而安州戍兵, 亦僅四千, 更無調發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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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天朝叛將沈志祥領兵千餘人, 自椵島投入瀋陽, 林慶業馳啓以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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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申 / 迎接都監啓曰: “詔使入椵島後, 我國不可無問安之禮, 而七處迎慰、中路問安, 皆有定規, 此外添送, 事涉規外, 故令鐵山迎慰使, 先行問安於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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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接見遊擊宋有倉。 有倉自登州向椵島, 遇風漂泊于全羅道靈光縣, 至是, 入京。 上謂有倉曰: “皇上萬福?” 有倉曰: “聖天子平安。” 上曰: “遠涉風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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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甲申 / 迎接都監啓曰: “詔使入椵島後, 我國不可無問安之禮, 而七處迎慰、中路問安, 皆有定規, 此外添送, 事涉規外, 故令鐵山迎慰使, 先行問安於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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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椵島後, 我國不可無問安之禮, 而七處迎慰、中路問安, 皆有定規, 此外添送, 事涉規外, 故令鐵山迎慰使, 先行問安於椵島, 措辭具告, 退候於鐵山, 仍行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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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船九艘出沒於獐子、椵島之間, 至是乘夜突入獅子島, 擄五人而去, 朝廷使宣川府使閔應騫, 領舟師追之。 我國運糧船一艘, 爲漢舡所獲, 漢人奪其米斛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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