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 정문승 / 鄭文升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8∼1875). 아버지는 술인이다. 1810년(순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여 세마가 된 뒤, 담양부사 등 여러 주군의 지방관을 거쳐 공조판서·지의금부사·지중추부사·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875년 숭정계에 올라 판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가 이

  • 정미기 / 丁未旗 [정치·법제]

    조선 시대 의장용으로 사용되던 육정기 중의 하나. 백색 바탕의 사각깃발로 대가의 노부와 어장에 사용하였다. 깃발의 위쪽에는 신형의 머리를, 중앙에는 적색 부적문을, 아래에는 미문의 머리를 그렸으며, 노란색의 화염각과 기각을 달았다. 기 바탕은 백주, 화염각과 영자는

  • 정미수 / 鄭眉壽 [종교·철학/유학]

    1456(세조 2)∼1512(중종 7). 조선 전·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종, 어머니는 경혜공주이다. 아버지가 사사되자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소환, 세조가 길렀다. 돈녕부직장, 형조정랑, 사헌부장령, 사섬시첨정, 도승지,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 정민교 / 鄭敏僑 [문학/한문학]

    조선후기『한천유고』를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차징(鄭次徵)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로 부호군 강사일(姜泗逸)의 딸이다. 4남 중 막내이며 시인 정내교(鄭來僑)의 동생이다. 어렸을 때에는 형 정내교에게서 글을 배웠다. 8세 때에는 “눈 녹으니 청

  • 정민병 / 鄭民秉 [종교·철학/유학]

    1800년(정조 24)∼1882년(고종 19). 조선 말기의 학자. 경세의 후손, 상관의 아들이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는 천고의 한이 이보다 더함이 없다고 주장하여 이를 반대, 이듬해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서원철폐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

  • 정민시 / 鄭民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5∼1800). 평안도관찰사·병조판서·함경도관찰사·장용위대장·돈령부판사 등을 차례로 지냈다. 홍국영과 함께 발탁되어 요직을 지냈으나 항상 분수를 지켰다. 순조가 즉위하자 사리사욕을 도모한 죄로 삭탈관직되었다. 사후 복관되었다.

  • 정발 / 鄭撥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지례 고손, 할아버지는 세현, 아버지는 명선, 어머니는 남숙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곧바로 해남현감·거제현령이 되었다. 이어 비변사의 낭관이 되었으며, 위원군수·훈련

  • 정백창 / 鄭百昌 [종교·철학/유학]

    1588(선조 21)∼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매신 증손, 할아버지는 원린, 아버지는 효성, 어머니는 홍의필의 딸이다. 1611년(광해군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도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현곡집』 7권 3책이 있다.

  • 정번수포법 / 停番收布法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양역변통을 규정한 제도. 조선시대 군역 보포화 과정은 후기에 들어오면서 양역인구의 면역·투속·가탁이 날로 증가하여 군포의 국고수입이 날로 감축되어가자, 국가에서는 양정의 파악을 철저히 하고 소정의 군액을 강력히 징수하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각종 전염병,

  • 정범조 / 丁範祖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3∼1801). 176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직서직장이 되었다. 왕명에 따라 〈건공가〉·〈백운고시〉를 지어 바침으로써 그 시명이 조야간에 크게 드러났다. 78세가 되던 정조말년까지 조정에 머물며 예문관·홍문관의 제학으로서 문사의 임무

페이지 / 1029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