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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유의양 / 柳義養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8∼?). 대사간·공조참판·부총관 등을 지냈다. 집의 때 백관들의 안일함을 논핵하였다.《춘관지》·《영희전지》를 편찬,《동국문헌비고》수정,《국조오례의》를 보집하였다. 저서로《춘방지》·《춘관통고》가 있다.

  • 유의정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한글필사본. 이 소설은 전란중의 가족이산이 유씨가와 한씨가의 관계 속에 얽혀 있다. 유의정과 한영이 각각 도사를 만나 몸을 의탁하면서 탁월한 능력도 확보한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누락되어 분명하지 않으나 이러한 능력의 확보는 인물의 사회 복귀

  • 유의칭가자 / 遺衣稱架子 [정치·법제]

    국장 발인 의식에 사용되는 가마. 국왕이나 왕비의 부장품을 실은 가마는 소궤채여, 자기궤채여, 악기궤표신궤채여, 변두궤연갑함채여, 유의칭가자, 복완함궤장궤채여, 증옥증백구의명정함채여, 애책채여 등이다. 이 중 유의칭가자는 국왕이나 왕비가 평상시 입던 옷을 실은 가마이

  • 유이양문록 / 劉李兩門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77권 77책. 국문 필사본. 유씨와 이씨 양가문의 관계를 다룬 가문소설로(家門小說),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은 가문소설 가운데에서도 두 가문을 중심 축으로 하는 이른바 ‘양문형(兩門型)’에 속하는 것이다. 표제 그대로 유·이 양 가문에서

  • 유이태설화 / 劉爾泰說話 [문학/구비문학]

    조선 숙종 때의 명의(名醫) 유이태에 관한 설화. 「허준설화(許浚說話)」와 함께 ‘명의담(名醫譚)’에 속한다. 「유이태설화」는 영남 지방에서 주로 전승되는데 ‘유이태탕’·‘순산비방’ 등이 있다. 유이태가 어느 곳을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담장 밑에서 약을 달이는데 약

  • 유인 / 孺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외명부인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종9품 작호. 문무관 정9품 종사랑(從仕郎)·효력부위(效力副尉)와 종9품 장사랑(將仕郎)·전력부위(展力副尉)의 적처에게 봉작된 작호이다. ≪경국대전≫에 정9품과 종9품의 적처에게 봉하여진 봉호로 격하되었다. 이 칭호는 일반백성의

  • 유장원 / 柳長源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유관현의 아들이다. 1763년(영조 39) 사마시로 나아갔다. 풍의가 준엄하고 단정하였으며 도량이 넓었다. 덕행을 쌓고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친구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만년에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 들어가서 고인들이 전하는 학문의 뜻을 터득하였다. 저서

  • 유재건 / 劉在建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법어』, 『겸산필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유창(劉敞)의 후손이었으나 가세가 몰락해 서리계급이 됐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시와 글에 두루 능했고 특히 서예를 잘했다. 전서(篆書)·해서(楷書)에 뛰어났다고 한다. 오

  • 유정 / 惟政 [종교·철학/불교]

    1544-1610. 조선시대의 승려. 16세에 직지사 신묵에게 출가하였다. 18세 선과에 급제하였다. 32세에 봉은사 주지가 되었으나 거절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604년에 일본으로 가서 전쟁으로 잡혀간 3천여 명의 백성을 데리고 귀

  • 유종춘 / 柳宗春 [종교·철학/유학]

    1720년(숙종 46)∼1795년(정조 19). 조선 후기 문신. 유성룡의 후손, 부친은 나옹 유운이다. 1791년(정조 15)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음직에 천거되어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 수직으로 첨지중추에까지 올랐다. 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풍은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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