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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정문승 / 鄭文升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8∼1875). 아버지는 술인이다. 1810년(순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여 세마가 된 뒤, 담양부사 등 여러 주군의 지방관을 거쳐 공조판서·지의금부사·지중추부사·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875년 숭정계에 올라 판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가 이
정미기 / 丁未旗 [정치·법제]
조선 시대 의장용으로 사용되던 육정기 중의 하나. 백색 바탕의 사각깃발로 대가의 노부와 어장에 사용하였다. 깃발의 위쪽에는 신형의 머리를, 중앙에는 적색 부적문을, 아래에는 미문의 머리를 그렸으며, 노란색의 화염각과 기각을 달았다. 기 바탕은 백주, 화염각과 영자는
정미수 / 鄭眉壽 [종교·철학/유학]
1456(세조 2)∼1512(중종 7). 조선 전·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종, 어머니는 경혜공주이다. 아버지가 사사되자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소환, 세조가 길렀다. 돈녕부직장, 형조정랑, 사헌부장령, 사섬시첨정, 도승지,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정민교 / 鄭敏僑 [문학/한문학]
조선후기『한천유고』를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차징(鄭次徵)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로 부호군 강사일(姜泗逸)의 딸이다. 4남 중 막내이며 시인 정내교(鄭來僑)의 동생이다. 어렸을 때에는 형 정내교에게서 글을 배웠다. 8세 때에는 “눈 녹으니 청
정민병 / 鄭民秉 [종교·철학/유학]
1800년(정조 24)∼1882년(고종 19). 조선 말기의 학자. 경세의 후손, 상관의 아들이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는 천고의 한이 이보다 더함이 없다고 주장하여 이를 반대, 이듬해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서원철폐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
정민시 / 鄭民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5∼1800). 평안도관찰사·병조판서·함경도관찰사·장용위대장·돈령부판사 등을 차례로 지냈다. 홍국영과 함께 발탁되어 요직을 지냈으나 항상 분수를 지켰다. 순조가 즉위하자 사리사욕을 도모한 죄로 삭탈관직되었다. 사후 복관되었다.
정발 / 鄭撥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지례 고손, 할아버지는 세현, 아버지는 명선, 어머니는 남숙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곧바로 해남현감·거제현령이 되었다. 이어 비변사의 낭관이 되었으며, 위원군수·훈련
정백창 / 鄭百昌 [종교·철학/유학]
1588(선조 21)∼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매신 증손, 할아버지는 원린, 아버지는 효성, 어머니는 홍의필의 딸이다. 1611년(광해군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도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현곡집』 7권 3책이 있다.
정번수포법 / 停番收布法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양역변통을 규정한 제도. 조선시대 군역 보포화 과정은 후기에 들어오면서 양역인구의 면역·투속·가탁이 날로 증가하여 군포의 국고수입이 날로 감축되어가자, 국가에서는 양정의 파악을 철저히 하고 소정의 군액을 강력히 징수하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각종 전염병,
정범조 / 丁範祖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3∼1801). 176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직서직장이 되었다. 왕명에 따라 〈건공가〉·〈백운고시〉를 지어 바침으로써 그 시명이 조야간에 크게 드러났다. 78세가 되던 정조말년까지 조정에 머물며 예문관·홍문관의 제학으로서 문사의 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