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유적 1,79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유적
  • 노성향교 / 魯城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향교. 1398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에는 1967년과 1975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이 전한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釋奠

  • 노은서원 / 魯恩書院 [교육/교육]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 있었던 서원. 1676년(숙종 2) 이량(李0x9621)이 성삼문(成三問)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옛 집 근처에 사우를 세워 제향하였으며, 1685년에 사육신 중 나머지 다섯분을 모셨다. 그 뒤, 1692년에 ‘노은’이라고 사액

  • 노포동고분 / 老圃洞古墳 [역사/선사시대사]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住居址] 및 초기철기시대의 덧널무덤[木槨墓] 유적.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에서 보이는 벽구는 영남지방 전기 청동기시대 집자리의 한 특징이다. 골아가리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의 표지적(標識的) 유물이며, 주로

  • 녹동서원 / 鹿洞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서원. 1630년(인조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최덕지(崔德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양사(存養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1665년에 최충성(崔忠成), 1695년(숙종 21)에 김수항(金壽恒), 1711년에 김창협

  • 논산돈암서원 / 論山遯巖書院 [교육/교육]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한 서원. 사적 제383호이며, 지정 면적은 5590㎥이다. 1634년(인조 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창건 이전 연산면에는 김장생의 아버지인 계휘(繼輝)가 설립한 경

  • 논산신기리지석묘 / 論山新基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신기리 고암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출토유물로는 간돌검〔磨製石劍〕 1점, 돌살촉〔石鏃〕 15점이 수습되었으나 출토상황은 알 수 없다. 모두 점판암(粘板巖)으로 만들어졌다. 돌검은 1단병식(一段柄式)으로 부여지방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식이

  • 논산원봉리지석묘 / 論山圓峰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이 돌널에서는 간돌검 1점, 돌화살촉 3점이 그 끝을 동북방향으로 향한 채 중앙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또 고운 붉은간토기계통의 토기조각도 출토되었다. 석기들은 모두 점판암제이며, 돌검은 자루가 이단병식(二段柄式)

  • 논현포대 / 論峴砲臺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포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논현동의 호구포에 있다 하여 보통 호구포포대라고도 한다. 강화도조약 체결 후 부산을 개항하고 두 곳을 더 개항하기 위하여 일본이 서해안에 나타나서 자주 탐사하므로 조정에서는 그들이 인천의

  • 누암서원 / 樓巖書院 [교육/교육]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서원.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宋時烈)·민정중(閔鼎重)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가금면의 누암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그 뒤 권상하(權尙夏)·정호(鄭澔)를 추가배향하였다. 1702년에

  • 눌제 / 訥堤 [경제·산업/산업]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와 부안군 줄포면 신흥리 사이에 축조되었던 고부천(古阜川)의 저수시설. 익산의 황등제(黃登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더불어 호남 삼호(三湖)의 하나였다. 1873년(고종 10)에 폐지되었으나 당시 제방의 길이는 1.5㎞, 둘레는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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