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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안인수가 / 安仁壽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안인수(安仁壽)가 지은 가사. 『송담문집(松潭文集)』에 부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국의 포로로 끌려갔던 백수회(白受繪)와 일본의 경도(京都)에 와 있던 안인수가 가사(歌辭)로 화답하면서 사귀었을 때의 작품이다. 총 17구의 짤막한 작품으로,형식은 주로

  • 안정복 / 安鼎福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1712∼1791). 감찰·익위사익찬을 역임하였다. 역사, 의학, 경서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다. 역사에 관한 저술을 많이 남겼다. 저술로 《순암선생문집》, 《동사강목》·《하학지남》·《열조통기》·《임관정요》·《계갑일록》 등이 있다.

  • 안조원 / 安肇源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만언사」를 저술한 유학자. 정조 때 대전별감을 지냈다는 것 외에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 34세에 추자도로 귀양 가서 풀려날 때까지의 비참하였던 모습을 노래한 가사 「만언사(萬言詞)」의 작자이다. 「만언사」는 여러 가지로 그 이름이 전하고 있다. 안조원이 지

  • 안주 / 按酒 [생활/식생활]

    술을 마실 때에 함께 먹는 음식. 안주로 적합한 음식은 육포·어포·생선회·육회·숙회·생선전·간전·천엽전·채소전, 파나 미나리에 조개를 섞어 지진 적, 전골, 두부 또는 생선찌개 등의 단백질성 요리와 냉채·탕평채·파와 미나리 강회 같은 신선한 채소요리가 적합하다. 대체로

  • 안주향교 / 安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남도 안주군(현재의 안주시) 안주읍 북문리에 있는 향교. 조선 전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전사청(典祀廳)·신문(神門)·홍살문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 안진 / 安縝 [종교·철학/유학]

    1617(광해군 9)∼1685(숙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경렴 증손, 할아버지는 대남, 아버지는 정섭, 어머니는 유간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합격, 1652년(효종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영광군수·장령·헌납 등을 지냈다.

  • 안진석 / 安晉石 [종교·철학/유학]

    1644(인조 22) - 1725(영조 1). 안문개의 후손, 아버지는 도징,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복 정경세에게 수학하고 퇴계를 사숙하여 학문으로 명성이 있었다. 저자는 학문에 뜻을 두고 전념하였다. 1725년(영조1) 1월 16일 천수를 다하고 정침에서 세상을

  • 안창렬 / 安昌烈 [종교·철학/유학]

    1847년(헌종 13)∼1925년. 안윤식의 후손, 안병례의 아들, 유주목의 문인이다. 천거로 관직에 올라 1882년 임오군요에 십조소로 의정을 밝혔다. 갑신정변 때에 왕을 호종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승계되고, 문경·영천·하양·이천·인제현감을 역임하고 괴산군수가 되어

  • 안창렬 문경현감 해유문서 / 安昌烈 聞慶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안창렬(安昌烈)은 담수(聃壽)의 10세손이다. 이 문서는 후임관이 관찰사에게 올린 해유첩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결락이 심하여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안창렬은 문경현감, 영천군수, 하양현감, 이천부사, 인제현감 등 외관직을 여러 번 역임하였는데 이 문

  • 안창후 / 安昌後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한설당유고』, 「한설당」, 「명분설」 등을 저술한 유학자. 아버지는 안세헌(安世獻)이다. 효우학행으로 유림의 포상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평생을 한설당에서 글벗들과 시문에 힘썼다. 1747년(영조 23)에 유교적 도덕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생활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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