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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익선관 / 翼善冠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왕·세자가 시무복인 곤룡포에 쓰던 관 형태는 모체가 2단으로 턱이 지고 앞보다 뒤쪽이 높으며 뒤에는 매미날개 모양의 소각 2개가 윗쪽을 향해 달려있다. 모 위에는 앞면의 청사변이 뒷면의 두 절각 사이를 얽게 되어 있다. 겉감은 자색의 사 또는 나로 만든다.

  • 익위 / 翊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익위사의 정5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좌·우 각 1인씩을 두었다. 1418년(태종 18)에 좌·우사어를 고친 이름이다. 이들은 왕세자를 위하여 경서를 강하고 또한 질문에 응답하는 데 참가하였던만큼 그 선발이 엄격하였다. 강연 외에 담제의례, 왕세자와

  • 익위사관원별단 / 翊衛司官員別單 [정치·법제]

    1879년(고종 16) 12월 당시 세자익위사 관원 명부. 세자익위사는 왕세자의 호위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1879년 12월 21일 왕세자의 병이 나은 것을 기념해 시상할 때의 명단과 동일하다. 작성 당시 세자익위사 관원의 구성 및 이속의 현황 파악이 가능한 문서이다.

  • 익종 / 翼宗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세자(1809∼1830). 순조의 세자이다. 1827년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대리청정을 한지 4년 만에 죽었다.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왕으로 추존되었다.

  • 익종대왕별호단자 / 翼宗大王別號單子 [정치·법제]

    효명세자의 별호를 기록해 둔 단자. 전문이 '익종대왕의 별호는 경헌이다'라고만 되어 있을 뿐 다른 기재사항이 없다.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된 때가 1834년(헌종 즉위년) 11월이므로 이 단자의 작성 시기도 이후의 어느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익종과 경헌은 나란히 대

  • 익찬 / 翊贊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익위사의 정6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좌·우익찬 각 1인씩이었다. 1418년(태종 18)에 좌·우익위를 고친 이름이다. 처음 익위사를 설치하여 세자좌우사로 고치면서 좌·우익찬을 두게 되었는데, 세자가 갑사 중에서 선발, 임명하거나 또는 공신자제 및 재

  • 인경왕후가상존호망단 / 仁敬王后加上尊號望單 [정치·법제]

    인경왕후 광산김씨에게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1753년(영조 29) 11월 28일에 빈청에서 '선목(宣穆)'이라 의정하여 영조의 계하를 바라며 올린 가상존호 망단. 이 망단은 가상하는 존호 '선목'을 첨서하여 '광열선목효장명현인경왕후'라고 써 올린 것인데 단망의 형태이다

  • 인경왕후시호등망단 / 仁敬王后諡號等望單 [정치·법제]

    인경왕후 광산김씨가 승하하자 시호와 능호 및 전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0년 11월 빈청에서 국왕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대행왕비시호등 망단. 이 망단은 시호로 '인경, 효인, 장헌'의 세 가지를, 능호로 '신릉, 익릉, 장릉'의 세 가지를, 전호로 '영소, 영리, 경녕

  • 인경왕후존호망단 / 仁敬王后尊號望單 [정치·법제]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광산김씨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1713년(숙종 39) 11월 28일에 빈청에서 그 존호를 '광렬'이라 의정하여 숙종의 계하를 바라며 존호를 올리는 망단. 이 망단은 존호로 '광열' 한 가지만을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태이다. 승정원에서는 '계(啓)

  • 인경왕후추상휘호망단 / 仁敬王后追上徽號望單 [정치·법제]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광산김씨에게 휘호를 가상하기 위해 1722년(경종 2) 5월 6일에 빈청에서 '효장명현'이라 의정하여 영조의 계하를 바라며 올린 가상존호망단. 이 망단은 존호로 '효장명현' 한 가지만을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태이다. 각각의 글자 아래에는 그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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