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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매파 / 媒婆 [사회/사회구조]

    혼인을 중매하는 여인으로 ‘뚜쟁이’라고도 함. 대체로 중년 이후의 노파들이었으므로 파(婆)·온(媼)이라는 자가 붙었다. 혼인적령기의 자녀를 둔 집을 연줄관계로 찾아다니면서 직업적으로 중매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남녀 두 사람의 자유의사에 의한 결합은 야합이라

  • 맥수가 / 麥秀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사기(史記)』에 실려 전한다. 기자(箕子)가 은(殷)나라의 도읍을 지나며 보니 고국은 망하였고 옛 궁실은 폐허만 남아 보리밭이 되어 있었다. 이에 감개하여 탄식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보면, “보리 이삭은 점점 자라고/벼와

  • 면천 / 沔川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혜군(槥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혜성군(槥城郡)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운주(運州)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후에 감무를 설치하였다. 1293년(충렬왕 19) 현인(縣人) 복규(卜奎)가 합단(哈丹)의 침입을 막

  • 명랑신인설화 / 明朗神印說話 [문학/구비문학]

    신라 시대의 법사인 명랑(明朗)의 행적에 관한 설화. 『삼국유사』 권5 신주편(神呪篇)에 실려 있다. 명랑은 진덕여왕 1년(647)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신인종(神印宗)이라는 새 종파를 창설하였다. 또 명랑은 신인종의 원찰인 금광사(金光寺)를 창건하고 법력으로 당나라

  • 명주 / 溟州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지명. 본래 예국(濊國)에 속했다가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한 뒤에는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로 불리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에는 이곳에 소경이 설치되었으나 658년(무열왕 5) 다시 주(州)로 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 명

  • 명주가 / 溟州歌 [문학/고전시가]

    신라 진평왕 때 김무월랑(金無月郞)이 지은 가요.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작품명과 전승설화가 『고려사』 악지,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 17 속악부, 『강릉김씨파보 江陵金氏派譜』·『강릉김씨세계 江陵金氏世系』 등에 전한다. 문헌에 따라 제작연대와 작자가 다르게

  • 명진 / 溟珍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거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매진이현(買珍伊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명진으로 고쳐 거제시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 다시 감무를 두었으나 1271년(원종 8) 왜구가 침입하여 대부분의 주민을 진주 임내의 영선현(永善縣)에 옮겨 살게 하였다. 조선 정종

  • 모란문 / 牡丹文 [예술·체육/공예]

    모란을 소재로 나타낸 장식 무늬. 모란에 대한 것은 『삼국유사』의 선덕여왕조에, 당시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홍색·자색·백색꽃의 모란 그림과 씨앗 서 되를 보내 왔다고 적고 있다.문양으로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암막새 기와에 모란꽃을 도안화한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많이

  • 모자 / 帽子 [생활/의생활]

    예의를 갖출 경우나 추위와 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쓰는 물건.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옷과 관을 반드시 갖추어 입던 예의민족이었다.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부여(扶餘) 사람들은 모자를 금·은으로 장식하였고, 고구려에서는 대가주부(大加主簿)는 무

  • 모죽지랑가 / 慕竹旨郎歌 [문학/고전시가]

    신라 효소왕 때 득오(得烏)가 지은 8구체 향가. 득오가 죽지랑(竹旨郎)을 사모하여 지었다는 노래. 『삼국유사(三國遺事)』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 竹旨郎條)에 관련설화와 함께 가사가 전한다. 이 노래의 이름은 양주동(梁柱東)이 ‘모죽지랑가’라고 칭한 이외에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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