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수 / 姜琪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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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강기수 / 姜璂秀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8-1946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산청(山淸)이고,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금융조합에서 서기로 재직하던 중 1919년 고종 황제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가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함안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이찬영(李讚榮)·조한휘(趙漢輝) 등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읍(咸安邑) 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19일로 날짜를 정하고 대산면(大山面)에 거주하던 한문선생 안지호(安知鎬)와 함께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3월 19일 12시 수백 명의 군중이 함안읍 봉성동(鳳城洞)에 모이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 주고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2시 3천여 명으로 늘어난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자, 놀란 마산경찰서 경찰들과 일본 경찰들이 무력으로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주재소 안의 공문서와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우체국·일본인 소학교 등의 공공건물을 부수는 등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자 일제는 마산 중포병대대를 급히 출동시켜 총·칼로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때 체포되어 1919년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와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1920년 8월 산청군 단성청년회(丹城靑年會) 창립총회에서 사교부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총무 등을 맡아 청년계몽운동으로 단성청년회를 이끌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200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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