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미운동 / 節米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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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사회/사회구조
· 유형 : 개념용어/개념 용어(일반)
· 시대 : 현대/현 대
쌀소비를 줄이기 위해 벌인 정부 주도의 국민운동. 한민족은 주식(主食)인 쌀의 생산량 부족으로 인해 기아와 초근목피의 삶을 살아왔다. 조선시대에도 쌀 부족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고 국가의 주요한 관심 사항이 되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일환으로 절미운동(節米運動)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일제시대가 되면서 쌀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절미운동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군수, 경찰서장, 면장 등이 미곡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절미운동 위반을 감시, 관리하였고,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하고 혼분식을 장려하였다. 일제시대의 절미운동 방식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과 쌀 생산량의 부족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보릿고개’로 기아와 빈곤이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0년 1월 서울시장이 절미에 관한 특별 담화를 발표하여 쌀이 원료가 되는 술, 떡, 과자 등의 제조를 금지했다. 1956년에는 농림부, 내무부, 재무부 합의로 1년 동안 50만 석의 쌀 절약을 목표로 절미운동을 전개하였고, 혼분식으로 식생활을 변화시킬 것을 장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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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국가정책이 음식소비문화에 미친 영향」 / 김미혜·정혜경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24(1)
『한국식생활사』 / 강인희 / 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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