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려 총 1,310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려
동서학당 / 東西學堂 [교육/교육]
1261년(원종 2) 강도에 설치된 중등 정도의 관립교육기관. 유학의 진흥을 위하여 지방 향교에 대신하여 중앙의 동쪽과 서쪽에 설립되었다. 개경으로 환도한 지 2년째인 1272년에는 그 운영책임자격인 별감을 각 1인씩 임명하였다. 동서학당은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고
동수국사 / 同修國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사관의 관직. 사관의 재상직은 한림원의 3품 이하 관직이 겸하는 수찬관들이 사관으로서 시정을 기록하고 실록을 편찬하는 일을 지휘·감독하였을 것이다. 1308년(충선왕 복위) 사관이 예문춘추관으로 되었다가 1325년(충숙왕 12)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동
동인지문 / 東人之文 [문학/한문학]
고려 말 최해(崔瀣)가 신라 최고운(崔孤雲)에서 고려 충렬왕 때까지 명가(名家)의 시문을 모아 간행한 시문선집. 『동인지문』의 편찬 연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는 최해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수록되어 있는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와 「동인사륙서(東人四
동인지문사륙 / 東人之文四六 [문학/한문학]
고려 말 최해(崔瀣)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시문집 중에서 사륙변려문만을 모아 간행한 시문선집. 고려 목판본. 15권. 『동인지문사륙』의 완질본이 15권이나 되는 것을 보면 『동인지문사륙』은 『동인지문』 중에서 사륙문(四六文, 騈儷文)을 모아 증보한 별질본(別帙本)인 듯
동인지문오칠 권7-9 / 東人之文五七 卷七~九 [문학/한문학]
1355년(공민왕 4) 최해가 신라와 고려 명현들의 시문을 모아서 간행한 시선집.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1355년(공민왕 4) 최해(崔瀣, 1288∼1340)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시문집 중에서 오언시와 칠언시를 모아 간행한 시선집으로 『동인지문오칠』 가운데
동정직 / 同正職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산직. 문반 정6품 이하와 무반 정5품 이하, 남반·이속·향리·승관 등에 설정되어 있었다. 같은 산직으로 문반 5품 이상, 무반 4품 이상에 두어진 검교직과 상하관계를 이루면서 하나의 산직체계를 구성하였다. 특히, 초입사직으로 활용되어, 음서를 통하여 입사
동제은상감운룡당초문반 / 銅製銀象嵌雲龍唐草文盤 [예술·체육/공예]
고려시대의 수반(水盤). 높이 18.5㎝, 입지름 5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수반은 운두가 얕고 평면이 넓으며 변죽을 도드라진 굵은 선으로 둘러 중후한 느낌을 주는 넓은 전을 갖추고 있다.넓은 전 윗면에는 S자 모양의 구름당초문을 은입사(銀入絲)하여 가득 채
동주 / 東州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철원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철원군(鐵圓郡) 또는 모을동비(毛乙冬非)이었는데, 신라 영역에 들어간 뒤 757년(경덕왕 16) 철성군(鐵城郡)이라 칭하였다. 그 뒤 궁예(弓裔)가 이곳에 태봉국(泰封國)을 세워 한때 융성하였다. 918년 왕건(王建)이 고려
동주 / 洞州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서흥 지역의 옛 지명. 고구려의 우화운홀(于火云忽) 또는 우차탄홀(于次呑忽)이었는데, 뒤에 오곡성(五谷城)으로 고쳤다. 757년(경덕왕 16) 오관군(五關郡)으로 바꾸고 진서(鎭瑞)를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한주(漢州)에 예속시켰다. 940년(태조 23) 동주
동지공거 / 同知貢擧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예부시의 시관. 지공거의 보좌역으로 정원은 1인이다. 972년(광종 23)에 둔 적이 있으나 곧 폐지되었고, 1083년(순종 1)에 다시 두어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1315년(충숙왕 2) 지공거가 고시관으로 개칭됨에 따라 동고시관으로 바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