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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목항아리 [역사/선사시대사]

    목이 그릇 높이의 5분의 1 이상으로 굵고 길게 붙어 있는 항아리. 목항아리는 고배(高杯)와 함께 신라토기의 대표적 기형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 의미로서의 긴 목이 달린 항아리의 형식은 신석기시대부터 보이며,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도 계속 사용된다. 특히, 검은간토기〔

  • 몰부가 / 沒斧歌 [문학/고전시가]

    신라 때 원효(元曉)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노래. 2구(句)로 된 한역시(漢譯詩)가 『삼국유사』 권4 원효불기(元曉不覊)에 실려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장차 큰 인물이 될 만한 아들을 두고 싶은 원효가 거리에서 미친 체하며 부른 노래라 적고 있다. 한시의

  • 무근촌 / 武斤村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 때무근촌현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무읍현(武邑縣)으로 고쳐 김제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백제 때는 시산군(屎山郡)의 영현이었던 것으로 본다. 고려 태조 때부윤(富潤)으로 고쳐 임피현의 영현으로 하였다가 뒤에 만경현(萬頃縣)으로

  • 무등산 / 無等山 [문학/고전시가]

    백제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고, 「지리산 知異山」·「선운산 禪雲山」·「방등산 方等山」 등과 함께 『고려사』 악지에 내력만 실려 전한다. 무등산은 광주(光州)에 있는데 백제 때는 이 곳에 성(城)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 무령 / 武靈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武尸伊郡)이었는데, 당나라에 망한 뒤 사반주(沙泮州)의 영현(領縣)으로 모지군(牟支郡)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무령군으로 바꾸어 무진주(武珍州)에 예속시켰고, 장사(長沙)ㆍ무송(茂松)ㆍ고창(高敞)의 세 현을 영현

  • 무령왕 금귀걸이 / 武寧王金製耳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귀걸이. 국보 제156호.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묘이다.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점 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금

  • 무령왕 금제 뒤꽂이 / 武寧王金製釵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뒤꽂이. 국보 제159호.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었음을 알리는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 무령왕 금제관식 / 武寧王金製冠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관식. 국보 제154호. 무령왕릉은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무덤은 지석을 통하여 501년에서 523년에 재위하였고 525년 매장된 무령왕과 529년에 매장된

  • 무령왕 발받침 / 武寧王足座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무령왕의 발받침. 국보 제165호. 왕의 족좌는 높이 20㎝, 길이 38㎝, 왕비의 족좌는 높이 39.5㎝, 길이 21.9㎝.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에서 많은 부장품과 함께 왕과 왕비의 목제 발받침이 출

  •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武寧王陵銅鏡一括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 거울 일괄.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세 점의 동경으로, 왕의 머리 부분에서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 왕의 족좌 부근에서 방격규구신수경(方格規矩神獸鏡),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수대경(獸帶鏡)이 각각 출토되었다. 의자손수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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