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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왕후 / 宣懿王后 [역사/조선시대사]
1705(숙종 31)∼1730(영조 6). 조선 제20대 왕 경종의 계비. 영돈녕부사 어유구의 딸이다. 1718년(숙종 44) 첫번째 세자빈인 심씨가 죽자 그 해에 14세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고,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722년
선자친화경숙빈최씨제문 / 先慈親和敬淑嬪崔氏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숙빈최씨 제문. 1753년 11월 6일에 영조가 육상궁에서 숙빈최씨의 중삭제(仲朔祭)를 지내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선조 / 宣祖 [역사/조선시대사]
1552년(명종 7)∼1608년(선조 41). 조선 제14대 왕. 중종의 손자, 덕흥대원군 초 셋째아들, 어머니는 정세호의 딸이다. 비는 박응순의 딸 의인왕후, 계비는 김제남의 딸 인목왕후이다. 명종의 사랑을 받았으며 성장하자 하성군에 봉해졌고, 1567년 명종이 후사
선희궁궁묘호망단자 / 宣禧宮宮墓號望單子 [역사/조선시대사]
1788년(정조 12) 12월 26일에 영빈이씨의 사당 이름을 의열궁(義烈宮)에서 선희궁(宣禧宮)으로 개칭할 때 삼망(三望)을 올렸던 망단자. 삼망은 "선희(宣禧)", "현희(顯禧)", "창희(彰禧)"이다. "선희" 위에는 낙점의 의미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낱장의
선희궁동지제친행의 / 宣禧宮冬至祭親行儀 [역사/조선시대사]
선희궁(宣禧宮)에서 임금이 동지제(冬至祭)를 친히 집전(執典)할 때의 절차를 기록한 책. 동지제가 있기 하루 전날 선희궁을 청소하는 일로부터 국왕을 비롯한 참예자의 자리를 정하고 제구와 제물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의식을 준비하는 절차와 국왕을 대차(大次)로부터 모셔와
선희궁우루처수개고유제문 및 환안제문 / 宣禧宮雨漏處修改告由祭文 및 還安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선희궁(宣禧宮)의 비가 새는 곳을 개수하는 일에 쓰인 두 건의 제문을 기록한 문서. 하나는 개수 사실을 영빈의 혼령에 알리기 위한 고유제(告由祭)에 쓰인 제문, 또 하나는 개수하기 위해 신주(神主)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가 개수가 끝난 뒤 되모셔올 때 치른 환안제(還
선희궁중삭대제홀기 / 宣禧宮仲朔大祭笏記 [역사/조선시대사]
홀기. 선희궁(宣禧宮)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를 모신 사당이다. 왕비가 아닌 후궁으로서 왕을 생산한 경우 종묘에 모실 수 없었기 때문에 따로 사당을 지어 모셨다. 영빈이씨의 시호를 따서 의열묘(義烈廟)라 하다가 1788년(정조 12)에
선희궁중삭준축책 / 宣禧宮仲朔準祝冊 [역사/조선시대사]
고종 광무연간에 선희궁(宣禧宮)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축문 형식을 규정한 글을 모은 책. 이 책에는 중삭제(仲朔祭)와 속절제(俗節祭)에 썼던 축문 2가지가 있다. 중삭은 음력 2·5·8·11월을 가리키는데, 중삭제는 중춘(仲春)과 중추(仲秋)인 2월과 8월의 상
선희궁춘추분제축식 / 宣禧宮春秋分祭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선희궁(宣禧宮)에서 춘분과 추분에 제향을 지낼 때 쓰이는 축문의 형식을 규정한 책. 축식은 제사하는 날을 맞이하여 술과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사를 올리는 해의 자리에 일본의 연호 "소화(昭和)"를 쓴 것으로 보아, 이 축식은 1926년
성이호 / 成彛鎬 [역사/조선시대사]
1817년(순조 17)∼1895년(고종 32).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돈오(惇五), 본관은 창녕(昌寧),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1852년(철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2년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 1883년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