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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평야 / 安州平野 [지리/자연지리]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청천강 하류 남안의 안주군과 평원군 일대에 펼쳐진 평야. 안주평야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동쪽은 자모산맥(慈母山脈)을 경계로 대동강유역과 분리되며, 남쪽은 평원군 어파현(魚波峴)의 이북으로 안주군과 평원군 북부,
안주향교 / 安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남도 안주군(현재의 안주시) 안주읍 북문리에 있는 향교. 조선 전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전사청(典祀廳)·신문(神門)·홍살문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안중근 / 安重根 [역사/근대사]
1879-1910. 구한말 교육가·의병장·의사(義士)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1908년 6월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이 되어 함경북도 홍의동의 일본군과 경흥의 일본군 정찰대를 격파했으나, 회령전투에서는 5,000여 명의 적을
안중근의사유묵 / 安重根義士遺墨 [예술·체육/서예]
한말의 항일독립투사였던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글씨. 보물 제569호. 이들 유묵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들로 대부분 “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 낙관하고, 인장 대신에 먹을 손바닥에 먹을 묻혀 장인(掌印)으로 찍었다. 글씨의 내용은
안진 / 安縝 [종교·철학/유학]
1617(광해군 9)∼1685(숙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경렴 증손, 할아버지는 대남, 아버지는 정섭, 어머니는 유간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합격, 1652년(효종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영광군수·장령·헌납 등을 지냈다.
안진석 / 安晉石 [종교·철학/유학]
1644(인조 22) - 1725(영조 1). 안문개의 후손, 아버지는 도징,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복 정경세에게 수학하고 퇴계를 사숙하여 학문으로 명성이 있었다. 저자는 학문에 뜻을 두고 전념하였다. 1725년(영조1) 1월 16일 천수를 다하고 정침에서 세상을
안창 / 安昌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고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막이현(莫伊縣)이었는데, 1018년(현종 9) 안창으로 고쳐서 고성군에 예속시켰다. 이곳의 지형은 동쪽의 이륜산(峓崙山)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남북으로 에워싸고 있어 해안분지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해안지방에는 명사(鳴沙)
안창남 / 安昌男 [과학기술/과학기술]
1901-1930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서울 출신. 상준의 아들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기술을 배운 뒤 동경 오쿠리비행학교(小栗飛行學校)에 입학, 3개월 만에 3등비행사의 면허를 따냄으로써
안창렬 / 安昌烈 [종교·철학/유학]
1847년(헌종 13)∼1925년. 안윤식의 후손, 안병례의 아들, 유주목의 문인이다. 천거로 관직에 올라 1882년 임오군요에 십조소로 의정을 밝혔다. 갑신정변 때에 왕을 호종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승계되고, 문경·영천·하양·이천·인제현감을 역임하고 괴산군수가 되어
안창렬 문경현감 해유문서 / 安昌烈 聞慶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안창렬(安昌烈)은 담수(聃壽)의 10세손이다. 이 문서는 후임관이 관찰사에게 올린 해유첩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결락이 심하여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안창렬은 문경현감, 영천군수, 하양현감, 이천부사, 인제현감 등 외관직을 여러 번 역임하였는데 이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