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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 선사시대사
  • 대구월성동주거지 / 大邱月城洞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유적은 대구 분지의 남쪽에 솟은 대덕산(大德山)에서 대략 서쪽으로 낙동강을 향해 뻗은 산괴가 끝나는 부위에 소재한 한 구릉의 서남 기슭에 있다. 유적의 남서쪽 선상지(扇狀地)에는 고인돌 떼가 분포하고 있다. 1

  • 대구이천동지석묘군 / 大邱梨泉洞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옛 대봉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 1936년 일제 당시의 조사자에 의해 5개의 구(區)로 나뉘어 명명되었다. 각 구는 대략 3개씩의 지석묘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중 1936년에 이미 조사된 이천동 제4구 Ⅰ·Ⅲ지석묘

  • 대구진천동입석 / 大邱辰泉洞立石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立石]. 선돌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크기는 길이 150㎝, 너비 110㎝, 높이 210㎝이다. 선돌 하부에 축조된 기단은 평면형태가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전체적인 규모는 길이 20∼25m, 너비 10∼12.5m 정도이다.

  • 대구칠성동지석묘 / 大邱七星洞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제3호 고인돌을 중심으로 6기가 방사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고인돌들에는 후대인 1795년(정조 19)에서 1797년 사이에 경상감사로 재임중이던 이태영(李泰永)이 꿈속에서 북두칠성이 고인돌 자리에 떨어진

  • 대구평리동유적 / 大邱坪里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유적. 1974년 8월 하순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기초를 파던 중 우연히 청동기와 철기유물이 발견되어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매장문화재로 신고되었다. 발견한 인부들의 말에 의하면 판석(板石)이나 목재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 대덕내동리지석묘 / 大德內洞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저동의 충남방적주식회사 정문 옆에 있는 4기의 고인돌.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호. 원내동 지석묘군은 호남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대전쪽으로 2㎞ 정도 국도를 따라 오면 좌측 도로변에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표고 80m∼90m

  • 대덕사성리지석묘 / 大德沙城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동구 사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1기만이 발견되었고, 1977년 대청댐 수몰지구 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금강의 작은 지류인 주안천(周岸川)이 흐르는 동면 지역은 대청댐 수몰지구 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이루는 곳이다.

  • 대동상리유적 / 大同上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 상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분묘 유적. 첫 번째의 유물 발견 당시에는 표면에 성토(盛土) 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깎인 표토 아래 약 25㎝ 내외의 깊이에서 철갈래창[鐵戟]·철투겁창[鐵鉾] 등이 먼저 발견되었다. 확장하여 동서

  • 대롱옥 / ─玉 [역사/선사시대사]

    구멍을 뚫은 짧은 대롱모양의 구슬. 짧은 것은 1㎝ 이하에서 긴 것은 10㎝ 이상 되는 것이 있다. 구슬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생한 형식으로 주로 목걸이에 쓰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도 쓰였다. 대롱옥은 처

  • 대전괴정동유적 / 大田槐亭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서구 괴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널무덤. 유물 중 청동기로는 한국식동검[細形銅劍]·거울[多鈕鏡]·동탁(銅鐸)·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가 있다. 토기로는 아가리[口緣部]가 밖으로 둥글게 말린 이른바 덧띠토기[粘土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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