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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 근대사
  • 한주교 / 韓柱敎 [역사/근대사]

    1907년(융희 1)∼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정평군 광덕면이다.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며, 흥남공장 노동정세를 조사하고 연구회를 결성하여 좌익운동 이론 연구에 힘썼다. 이후 연구회를 개편하여 좌익노동조합결성준비회

  • 한진교 / 韓鎭敎 [역사/근대사]

    1887-1973. 독립운동가. 호는 송계(松溪). 평안남도 중화 출신. 1914년 6월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여 해송양행(海松洋行)을 설립, 경영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홍성린(洪成麟)·선우 혁(鮮于赫)과 협의하고 인성소학교(

  • 한태석 / 韓泰錫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청양 출생. 향리에서 서당교육을 받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충격을 받고 홍성의 민종식(閔宗植)의병부대를 찾아가 합류, 항일투쟁에 적극 가담, 활동하였다. 그뒤 독자적으로 충청남도 홍산(鴻山) 지치(支峙)마을에

  • 한훈 / 韓焄 [역사/근대사]

    1890-195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성초(聖初). 호는 송촌(松村).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했고, 광복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광복회로 개편되어, 강화된 항일전을 전개하고 친일파 숙청활동을 하던 중 발각되자 재차 만주로 망명했다. 1920년 암살단과

  • 한흥 / 韓興 [역사/근대사]

    1888-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연해주의 권업신문사 통신원과 간북북부총판부 서기 등으로 항일운동을 했고, 군자금 조달을 하다가 붙잡혀 복역한 뒤, 신간회 상무간사로 활약하였다. 함흥중앙학원·경성여자상업학교·함흥대흥상업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고, 함흥대동학

  • 한흥교 / 韓興敎 [역사/근대사]

    1885-1967. 독립운동가. 일명 진산(震山)·헌산(憲山). 부산 출생. 1911년 10월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혁명군 구호의장(救護醫長)으로 쑤저우(蘇州)·전장(鎭江) 등 전선에 나가 참전하였다. 1912년 북벌혁명군홍십자회대장(北伐革命軍紅十字會隊長)에 임명되었으며

  • 한흥근 / 韓興根 [역사/근대사]

    1886-1948.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암(白岩). 함경남도 원산 출신. 응구(應球)의 아들이다. 어려서 향리에서 사서삼경을 수학하다가 근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원산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한 뒤 측량학교(測量學校)를 다시 이수하였으며, 20세

  • 한희룡 / 韓羲龍 [역사/근대사]

    1888-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의룡(韓義龍)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용강(龍岡)이다. 1919년 서울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을 시발점으로 용강군 일대에서도 소규모 시위운동과 집회들이 산발적으로 시행되자 강예순(姜禮舜)·최용선(崔龍善) 등이

  • 함석은 / 咸錫殷 [역사/근대사]

    1892-1928.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평양의 숭덕학교(崇德學校)교원으로 평안도 지방 학생운동의 책임자가 되어 평양의 각 학교 교사 및 학생을 규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 함수만 / 咸壽萬 [역사/근대사]

    1907-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마산면(馬山面)이다. 전주신흥학교(全州新興學校) 교우회(校友會) 임원 등을 역임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발발한 광주학생운동으로 인해 민족의식이 크게 고취되었다. 이에 개교 22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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