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협 / 崔宗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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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이종흡 / 李鐘洽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7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이종흡(李鐘洽)이다.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치하의 정부에서 산림보호를 명목으로 내세우면서 단천 지역 주민들에게 산에서 나무를 채취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버렸다. 그리고 삼림조합을 개편하면서 군(郡) 단위조합으로까지 확대개편하면서 단천삼림조합에서 과다한 삼림조합비를 요구하였다. 이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일제는 공권력을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단천의 삼림조합을 운용하였다. 그러자 단천군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사가 달린 권리를 찾기 위해서 과다한 삼림조합비의 인하 요구가 아닌, 단천삼림조합에 대한 불만으로 번지면서 일제 자체를 타파해야한다는 의식으로 변하였다. 그러던 중 하다면 연대리에 살던 허달규가 생계를 위해서 산에서 나무를 몰래 베었다가 삼림단속을 하던 간수에게 들켰다. 그래서 간수가 취조를 하려다가 허달규의 부인에게 구타를 가하고 감금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화가 난 농민조합 간부들과 하다면의 주민 200여 명이 들고 일어나서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기회에 단청군청까지 가서 담판을 짓자는 의견일치로 7월 18일 단천군청으로 향하였다. 가던 길에 일본 경찰에 의해 주모자 20여 명이 검거되었고 하다면 주민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격분한 하다면 주민은 어느새 400여 명까지 불어났고, 7월 19일 단천군수와 면담하면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이 일로 단천군의 하다면·파도면·복귀면 주민 2천여 명이 모여서 단천군청을 습격한 후, 단천경찰서에 구속되어 있던 구속자들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던 중 일본 경찰이 군중을 향해 쏜 총에 맞아서 김계환(金啓煥)·김득수(金得洙)·김을룡(金乙龍)·김응철(金應喆)·김창언(金昌彦)·심정붕(沈正鵬)·안경룡(安京龍)·안길현(安吉炫)·안병환(安丙煥)·유경을(劉京乙)·이선식(李善植)·이원호(李元鎬)·장종형(張宗亨)·최두필(崔斗弼)·허병률(許丙律) 등과 함께 순국하였다. 당시에 중상자도 20여 명 발생하였다. 2002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