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근 / 金信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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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78-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洪原)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이다. 1919년 2월 중국 길림성 용정촌(龍井村) 영신학교(永新學校)에서 기독동지청년회(基督同志靑年會)를 조직하고 연사로 활동하였고, 간도(間島) 국자가(局子街)의 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박동원(朴東轅)·김영학(金永學), 용정촌의 김정(金精), 팔도구(八道溝)의 유예균(劉禮均), 평강(平康)의 고동환(高東煥) 등이 조직한 광복단(光復團)의 대한독립기성총회(大韓獨立期成總會)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3월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중국 용정촌과 두도구(頭道溝)로 파견되어 군자금 모금에 많은 활약을 펼쳤으며, 3월 13일 용정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본적지인 홍원에 안치(安置)되었다. 1919년 음력 7월 북간도 독립운동단체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소속 박용운(朴龍雲)의 부탁으로 홍원 지역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감독부의 함경남도 총감부(總監府) 홍원군을 책임졌으며, 1920년 1월 홍원군참사(洪原郡參事)로 뽑혀서 활약하였다. 1920년 황병길(黃丙吉)이 조직한 맹호대(猛虎隊)의 용정촌 통신기관을 책임졌으며, 같은 해 12월 홍원청년구락부 대표로 참석한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총회에서도 연사로 강연을 하였다. 1921년 4월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던 사실이 드러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에도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순회강연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일본 경찰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강제 추방되어, 이후 간도 용정으로 다시 가서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힘썼다. 2003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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