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우 / 姜九禹

검색결과 / 전체   이전화면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중국 북간도(北間島)의 대표 독립운동단체이자 천도교인들이 활동주체였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결성 때부터 가담하여 북간교구 금융원(金融員)·교구장(敎區長)·제2중부지방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제2중부지방회장을 지내는 동안 봉오동전투 상황·중인총대(中人總代) 태도·각지 상황 정보 등을 보고하였다. 북간도에서 국내의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3월 13일에 일어난 용정 만세시위 때 천도교인을 비롯한 대종교인·천주교인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력시위로 사망자 13명과 부상자 30여 명이 속출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조선독립의사회를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한족독립기성회(韓族獨立期成會)로 개편하였을 때 신명덕(申明德)·김병흡(金秉洽)과 함께 천도교 대표로 가담하여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도 활약하였다. 1921년 2월 군사통일회의(軍事統一會議)가 북경(北京)에서 개최되자 북간도 대표자로 참석하여 재정위원을 지냈다. 1922년 고려공산당에 당원으로 가입하여 북만(北滿)지부장을 지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되자 단독으로 조직된 창조파의 국민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북경에서 열린 이승만(李承晩) 탄핵운동에 가담하였으며, 1926년에는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北京促成會) 결성식에 참석하였다.

· 관련자료 (5건)

· 관련주제어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