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점 / 金時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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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8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곽산(郭山)이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13년 3월 20일 무죄로 출옥한 후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김승만(金承萬)·오순근(吳淳根)·김두만(金斗萬)·오능조(吳能祚)·이영식(李英植)·박춘근(朴春根)·오학수(吳學洙)·신기갑(申基甲) 등과 함께 안동현임시의사회(安東縣臨時議事會)를 조직하고, 총대(總代)로서 활약하였다. 같은 해 11월 26일 김승만·오동진(吳東振)과 함께 각 지방 청년단을 통합하여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조직하였다.
1920년 1월 13일 〈1919년 11월 1일에 직접 발기인이 되어 17명의 명의로 된 대한청년단연합회 취지서〉를 《독립신문》에 게재하였다. 같은 해 2월 현재 재무부장으로서 총재 안병찬(安秉瓚)・부총재 김찬성(金燦星)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1920년 1월 12일 임시 정부 연통제산하 평안북도 독판부 내무사로 임명되어 1921년 9월 21일까지 활동하였다.
1921년 4월 19일 대한청년단연합회 제2회 정기총회가 개최되자 참석하여 임시 정부 지원과 무장 항일투쟁 등을 결의하고, 안병찬(安秉瓚)을 총재로 추대하고 재무부장에 재선출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