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경 / 玄正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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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86-1941. 독립운동가. 본명은 병근(炳瑾). 호는 하죽(河竹).
평안북도 박천 출생. 1919년의 3·1운동 후 만주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한족회(韓族會)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하였다. 1920년에는 광한단(光韓團)을 조직, 그 위원장에 선임되어 무기를 구입하고 동지 50여명을 규합, 1922년 통의부(統義府)로 발족될 때까지 실질면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22년 8월 한족회·광복군총영·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서로군정서·광한단·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등 독립운동단체 대표가 봉천성 환인현(奉天省桓仁縣)에 모여 출범시킨 대한통의부의 법무위원장에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25년 1월 길림(吉林)에서 양기탁(梁起鐸)·김동삼(金東三)·오동진(吳東振)·지청천(池靑天) 등과 함께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여 중앙위원회에 선임되었으며, 그뒤 중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26년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 조직에 참여,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뒤 정의부·신민부(新民府)·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등의 3부 통합이 실패하자, 1928년 5월 신안둔(新安屯)에서 국민부(國民府)가 결성될 때 법무위원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930년 공산주의자로 전향하여 국민부를 전복시키려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충칭(重慶)으로 탈출, 1940년 김성숙(金星淑) 등과 민족해방동맹(民族解放同盟)을 결성, 그 주석에 취임하였다.
그뒤 치장(綦기江)에서 열린 회의에서 산재한 여러 개의 항일독립운동단체를 이동녕(李東寧)의 지시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집결시킬 것에 합의하여 통합되는 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