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숙 / 金時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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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80-19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숙부 김문주(金汶柱)의 권유로 40세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개화여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수원(女修園)’이라는 야학을 개설하여 활동하던 강평국(姜平國), 최정숙(崔貞淑) 등과 함께 계몽운동을 하였으며, 조천리에서는 여성야학을 운영하며 항일 교육을 하였다는 이유로 경찰관에게 검거되었다가 풀려났다. 이후 경찰들의 압박으로 독지가들의 후원이 끊어져 야학 운영이 어려워지자, 1927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 건너갔다. 그곳에서 동포 여성들이 착취당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재일여공보호회(在日女工保護會)’를 조직하여 활약하였으며, ‘재일여공소비조합’의 회장이 되어 여공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죽암(竹岩) 고순흠(高順欽)이 창립한 신진회(新進會)의 여성부장으로, 그의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녀가 오사카 적십자 병원에서 사망하자,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주 출신 여성근로자들이 ‘선각 여성 김시숙 호상회(先覺女性金時淑護喪會)’를 조직하여 고유제를 지내고, 제주도 조천의 공동묘지로 옮겨와 안장하였다. 고순흠이 그녀의 비(碑)에 “진정한 열부라면 충실한 반역자일 것”이라는 내용의 비문(碑文)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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