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대 총 1,19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대
신분활국 / 臣濆活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삼한 소국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명칭들은 당시의 중국음에 따라 표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당시의 중국음은 대체로 지금의 우리 한자음과 가까우므로 삼한 소국의 위치비
신성 / 新城 [지리/인문지리]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푸순(撫順) 동북쪽 북관산(北冠山) 위에 있었던 고구려 때의 성(城). 『삼국사기』에는 276년(서천왕 7) 왕이 이곳을 순시하였다고 한다. 봉상왕 때 모용외(慕容廆)가 변경을 침입하자 국상(國相)인 창조리(倉助利)의 건의를 받아들여 고노자(高奴
신성주 / 新城州 [지리/인문지리]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푸순(撫順)에 있었던 고구려 때의 성(城). 당나라가 이곳을 점령한 뒤에 신성주도독부(新城州都督府)를 설치하였다. 수양제와 당태종의 고구려 침입과 관계있는 지명이다.『삼국사기』에는 서천왕 때 왕이 이곳을 순행(巡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국원왕
신소도국 / 臣蘇塗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 보인다. 이들 나라 이름들은 당시의 중국음에 따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오늘날 우리 나라의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삼한소국의 위치비정에 참고가 된다. 신소도국의 소도(蘇塗)는 『삼
신시 / 神市 [지리/인문지리]
고조선 건국 이전의 도읍지. 『삼국유사』권1 고조선조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의하면,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천부인(天符印) 세개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는데, 이곳을 ‘신시’라고 하였다고 한다
신유림 / 神遊林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경주지역의 옛 지명. 『삼국유사』에는 경주에 7개의 가람터가 있는데, 그 중 신유림의 천왕사(天王寺)는 문무왕 때 건조되었다는 것과 신유림은 고승(高僧) 명랑(明朗)이 만들었고 낭산(狼山)의 남쪽 기슭에 있으며, 명랑은 당나라 군사의 침입을 능히 막을 수 있는
신창 / 新昌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굴직현(屈直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기량(祁梁)으로 고쳐 탕정군(湯井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 신창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에 이속시켰다. 1391년(공양왕 3) 현의
신평 / 新平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신평으로 고치고 혜성군(槥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홍주(洪州)에 예속되었고, 그 뒤 1895년(고종 32) 면천군(沔川郡)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신풍 / 新豊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벌음지현(伐音支縣, 또는 武夫縣)이었는데, 당나라가 점령한 뒤 부림(富林)으로 고쳐서 동명주(東明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신라 경덕왕 때 청음(淸音)으로 바꾸어 웅주(熊州)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고려 태조 때 신풍으로
신흔국 / 臣釁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우리 민족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동이전의 한전(韓傳)에는 삼한의 여러 소국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나라 이름의 한자표기는 우리말 이름을 당시의 중국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