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대 총 1,19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대
수성 / 輸城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驛站). 본래 발해 때 용원부(龍原府)였는데 여진이 이 곳을 차지하여 용이(龍耳)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공민왕 때 수복되었고 조선 태조 때 만호(萬戶)를 두었으며,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의 관할에 두었다. 남쪽
수안 / 守安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김포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수이홀(首爾忽)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술성현(戌城縣)으로 이름을 바꾸어 장제군(長堤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태조 때 수안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종 때 수주(水州) 임내에 속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설치
수입 / 水入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구 지역의 옛 지명. 신라시대에 경덕왕이 통구(通溝, 또는 通口)로 고쳐 기성군(岐城郡, 또는 金城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수입이라는 지명은 이곳의 동파령(東坡嶺) 밑에서 솟아난 물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땅속으로 복류한 뒤 다시 솟아나 수입천을 이루는데, 이렇게
수주 / 樹州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부천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었는데, 신라의 영역이 된 뒤 경덕왕 때 장제군(長堤郡)이라 개명하였다. 고려 초 수주로 고쳤고 995년(성종 14) 단련사(團練使)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 지수주사(知樹州事)를 두어 격을 높였
수주 / 水州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수원과 화성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水城郡)으로 고쳤다. 940년(태조 23) 고려 태조가 남쪽을 정벌할 때 군민 김칠(金七)ㆍ최승규(崔承珪) 등 200명이 귀순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수주로 승격시켰고 안산
수창 / 壽昌 [지리/인문지리]
대구광역시 수성과 달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위화군(喟火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수창군으로 고쳐 대구(大丘)ㆍ팔거(八居)ㆍ하빈(河濱)ㆍ화원(花園)의 4개 현을 관할하였다. 1018년(현종 9) 수성군(壽城郡)으로 고쳤으며, 한때 가창도호부(嘉昌都護
수천 / 隨川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정주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 땅이었으며, 고려 초에 수주(隨州)가 되어 북계(北界)의 관할하에 있었다. 1231년(고려, 고종 18) 몽고군이 이곳과 창주(昌州, 지금의 昌城)를 함락시키어 주민들이 자연도(紫燕島)로 피난하였다가 1261년(원종 2) 돌아
숙천 / 肅川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평원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의 평원군이었으나 928년(태조 11) 진국성(鎭國城)을 이축(移築)하고 통덕진(通德鎭)으로 개칭하였다. 983년(성종 2) 숙주(肅州)라 칭하고 방어사를 두었으나 뒤에 지군사(知郡事)로 강등되었으며, 1416년(태종 16) 숙
순자 / 荀子 [종교·철학/유학]
BCE 313-BCE 238년 경.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 조나라에서 출생하였다. 여러 나라를 유세하다가 만년에는 초나라에서 강학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설은 성악설로 대표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욕망으로 가득찬 존재이므로 본래 악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
순장 / 殉葬 [종교·철학/유학]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장법. 죽은 사람이 사후에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활을 한다는 관념에서 비롯하였다. 신분계층이 뚜렷하고 가부장제적인 고대국가에서 많이 행해졌으며, 왕후 또는 귀족이 사망하였을 때 첩, 신하, 종자 등을 함께 묻는 것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