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원만리 / 元萬里 [종교·철학/유학]
1624(인조 2)∼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호 증손, 할아버지는 유남, 아버지는 두표, 어머니는 최동식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의성현령 두추에게 입양되었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음보로 형조좌랑이 되었다. 병조참의, 병
원삼 / 圓衫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부녀자들이 입던 예복(禮服). 원삼이란 앞깃이 둥근 데에서 온 명칭으로 옆이 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릎을 덮어 내리는 긴 길이에 앞길은 짧고 뒷길은 길다. 앞여밈은 합임(合袵:섶이 없이 서로 맞대어진 형태)이고, 양 옆길이 절개되어 있다. 원삼은 조선
원소도감 / 園所都監 [정치·법제]
왕가의 묘소 조성을 위해 임시로 마련된 관서. 왕세자나 세자빈 및 왕의 친척 등의 묘소 조성을 위해 임시로 마련되었으며, 원소 조성의 과정을 기록한 <원소도감의궤>를 편찬하였다.
원소호석배립장계 / 園所虎石排立狀啓 [정치·법제]
1753년(영조 29) 9월 26일. 홍봉한(洪鳳漢)이 영조에게 어느 원소에 호석을 배진하고 배립하는 일에 대하여 진행 상황을 보고한 장계. 이 문서내용은 신시경에 호석을 배진하고 배치 장소를 측량, 결정하였으며, 내일 공역을 한다는 치계이다. 승정원을 거쳐서 국왕에게
원손관례교서 / 元孫冠禮敎書 [정치·법제]
1761년(영조 37) 원손 성과 왕손 인, 진에게 내리는 관례 교서. 이 교서는 절첩장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승정원일기》에 왕세손의 관례 교서를 작성한 기사가 1761년(영조 37)에 실려 있다. 이 교서도 당시에 제작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는 작위
원시 / 院試 [정치·법제/법제·행정]
한성부와 경기에 거주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 무과 초시. 훈련원이 주관하였다. 본래 원시는 병조와 훈련원이 공동으로 시취하였으나 세종 9년(1427)부터 문과의 관시의 예에 따라 훈련원이 단독으로 시취하게 되었다. 선발인원은 태종 2년에 50원(경기에서는 별도로 40인
원옹집 / 園翁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승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오도일에 의하여 수집, 그의 문집과 함께 오도일의 아들이 1728년(영조 4) 간행하였고, 그 뒤 1796년(정조 20) 저자의 증손 재항이 중간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도서에 있다. 권두에 윤동수 서문과
원유관 / 遠遊冠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왕과 왕세자가 조현복인 강사포에 쓰던 관 원유관·강사포로 대를 이루는 조복이다. 제복인 면류관·구장복, 상복인 익선관·곤룡포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국왕의 예복으로 계속 준용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고종이 입고 찍은 사진도 있다. ≪세종실록≫ 예지에 관
원유남 / 元裕男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31(인조 9). 조선 중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송수, 아버지는 호, 어머니는 김광후의 딸이다.1583년(선조 16) 무과에, 1586년 무과중시에 각각 급제하였다. 창성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원윤 / 元胤 [예술·체육/체육]
조선전기 승마와 격구 지도교관을 역임한 장수.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7년(1425) 3월에 총제(摠制) 문효종(文孝宗)·현귀명(玄貴命)·원윤과 훈련관 제조(訓鍊觀提調)에게 명하여 군사에게 격구(擊毬)를 가르치게 하고, 이어 격구의 장(杖) 30개를 훈련관(訓鍊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