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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이흥민 / 李興敏 [종교·철학/유학]
1809~1881. 조선 말기의 문신. 1864년(고종 1) 대사헌, 그해 7월 동의금부사를 지냈다. 1865년 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 사은 겸 동지정사(謝恩兼冬至正使)로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7년 함경도관찰사에 제수되어 1870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1
이희겸 / 李喜謙 [문학/구비문학]
조선후기 양덕현감을 역임한 문신. 그의 본관에 대해 홍직필(洪直弼)은 청양(靑陽)이라 하였으나 『국조방목』에는 함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하다. 일생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진사로서 1739년(영조 15) 알성갑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희경 / 李熙絅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66년(고종 3). 조선 후기의 무신. 이윤성 손자, 이경식의 아들이다. 선전관에 취임한 뒤 1826년(순조 26)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뒤 어영대장·총융사·금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1851년 좌변포도대장이, 금위대장,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이희발 / 李羲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8∼1849). 정동필의 문인, 179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규장각의 초계문신으로 발탁, 그 뒤 승진하여 순조 때 대사간을 지내고 헌종 초기에는 승지가 되었다. 병조참판·지중추부사를 거쳐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1849년에는 형조판서가
이희조 / 李喜朝 [종교·철학/유학]
1655(효종 6)∼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단상 아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이 있은 뒤 유일로 천거되어 건원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다시 천거되어 전설별검에 임명, 이어서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지내고 진천현감이 되어 선
이희준 / 李羲準 [문학/구비문학]
조선후기 형조판서, 예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문인. 형인 이희평(李羲平)의 호가 잘못 전하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이산중(李山重), 아버지는 예조참판 이태영(李泰永)이다. 뒤에 친척 이현영(李顯永)에게 입양됐다. 1805년(순조 5) 증
이희평 / 李羲平 [문학/구비문학]
조선후기 전주판관, 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이산중(李山重)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이태영(李泰永)이며, 이도영(李道永)에게 입양됐다. 집안은 노론으로 혜경궁홍씨의 외척이다. 부인 풍산 홍씨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정려된 바 있다. 1810년(순조
익사공신 / 翼社功臣 [역사/조선시대사]
1613년 임해군의 역모사건에 공을 세운자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에게 내린 칭호. 모두 48인을 3등으로 구분하였는데, 1등은 허성·김이원·유희분·최유원·윤효전 등 5인으로 효충분의병기결책익사공신이라 하였고, 2등 15인에게는 효충분의병기익사공신이라 하였으며, 3
익위사관원별단 / 翊衛司官員別單 [정치·법제]
1879년(고종 16) 12월 당시 세자익위사 관원 명부. 세자익위사는 왕세자의 호위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1879년 12월 21일 왕세자의 병이 나은 것을 기념해 시상할 때의 명단과 동일하다. 작성 당시 세자익위사 관원의 구성 및 이속의 현황 파악이 가능한 문서이다.
익종 / 翼宗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세자(1809∼1830). 순조의 세자이다. 1827년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대리청정을 한지 4년 만에 죽었다.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왕으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