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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 조선시대사
  • 전문시 / 箋文試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세조 때 3품 이하의 문신을 대상으로 하여 전문으로 실시하였던 임시시험. 전문은 등극, 세자나 왕후의 책봉 등과 같은 국가의 길사 및 흉사, 동지와 같은 절일에 내외관료가 국왕에게 올리는 사륙변려체의 글로서, 1445년(세종 27) 중외관원의 전문규식(箋文規式)

  • 전시 / 殿試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과·무과의 제3차 시험. 조선시대의 문과·무과에는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 시험이 있었다. 전시는 국왕의 친림 하에 복시에서 선발된 문과 33인, 무과 28인의 합격자들을 재시험해 등급을 결정하는 시험이었다. 이 시험에서는 부정을 저질렀거나 특별한 사유가

  • 정렬부인 / 貞烈夫人 [역사/조선시대사]

    전근대사회에서 정조와 지조를 굳게 지킨 부녀자에게 내려지던 칭호. 국가에서 특이한 행실을 가진 부인에게 시호로 내린 일도 있다. 충효열(忠孝烈)은 유학을 숭상하는 동양의 근본사상이다. 고려 때까지는 여자의 정조와 절개가 그렇게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시

  • 정빈이씨묘비 / 靖嬪李氏墓碑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靖嬪李氏)의 묘비를 종이에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전면 족자는 1점, 음기는 2점이 남아 있다. 정빈이씨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조성되어 있고, 1778년(정조 2)에 수길원(綏吉園)이라는 원호를 얻었다. 이

  • 정성왕후 / 貞聖王后 [역사/조선시대사]

    1692년(숙종 18)∼1757년(영조 33). 조선 제21대왕 영조의 원비. 서종제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숙종의 제4왕자인 연잉군과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 1721년(경종 1) 경종이 몸이 약하고 후사가 없어, 연잉군이 세제로 책봉되자 동시에 세제빈,

  • 정성왕후홍릉비 음기 / 貞聖王后弘陵碑 陰記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貞聖王后)의 묘비를 종이를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전면은 남아 있지 않고, 음기 족자만 4점이 남아 있다. 정조의 문집《홍재전서》권15에도 비문이 실려 있는데, 내용이 서로 동일하다.

  • 정성왕후홍릉지문초 / 貞聖王后弘陵誌文草 [역사/조선시대사]

    1757년(영조 33) 봄에 사도세자가 돌아가신 정성왕후를 위해 지은 묘지문의 초고. 단 1장의 종이에 행초로 글을 썼고 교정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글은 장헌세자의 문집 《능허관만고》권7에 실린 <정성왕후홍릉지>의 앞부분과 거의 동일하므로, 홍릉의 지문의 초고

  • 정순대비진향문 / 貞純大妃進香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순왕후에게 올리기 위해 지은 진향문 17편과 애책문, 시책문, 원릉비의 음기 등이 기록된 책. 진향문은 안춘군 이륭(李烿) 등 도성 밖에 거주하는 종친과 유수, 감사 등 지방관들이 지어 올린 것이다. 애책문은 김재찬(金載瓚)이 지었고, 시책문은 이만수(李晩秀)가 지

  • 정순왕후상시옥책문 / 貞純王后上諡玉冊文 [역사/조선시대사]

    1805년(순조 5) 5월 26일에 정순왕후에게 '소숙정헌(昭肅靖憲)'이라는 존호를 추상하고 '정순(貞純)'이라는 시호를 올림을 알리기 위해 만든 옥책문의 탁본과 금보의 인영. 정순왕후가 생시에 영조의 치적을 내조하고, 정조가 무사히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하였으며,

  • 정순왕후원릉비 / 貞純王后元陵碑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묘비를 종이에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전면과 음기 각각 4점씩 있다. 정순왕후는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내에 있는 영조의 원릉(元陵)에 부장(袝葬)되었다. 비문에는 정순왕후의 출생과 왕비 책봉, 수렴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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