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 > 조선시대사 총 506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역사 > 조선시대사
육상궁작헌례제문 / 毓祥宮酌獻禮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육상궁의 두번째 회갑을 맞는 1790년에 작헌례를 시행하면서 지은 제문. 이 제문의 우측 하단에 '庚戌二月二十八日'이라 기재되어 있어 1790년(정조 14) 2월 28일에 지어진 글임을 알 수 있다.《정조실록》에 의하면 이날 정조는 육상궁에 작헌례를 행하고,
육상궁재회수신친행동향제제문 / 毓祥宮再回晬辰親行冬享祭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육상궁의 재회(再回) 생신인 1790년 11월 6일에 동향제(冬享祭)를 시행하면서 지은 제문. 우측 하단에 '庚戌十一月初六日'이라 써 있어 1790년(정조 14) 11월 6일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문은 《홍재전서》권22에 수록되어 있다.
육상궁춘추분제축식 / 毓祥宮春秋分祭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춘분과 추분 때 육상궁 제사의 축식을 쓴 책. 축식은 제사의 진행 중 초헌(初獻)과 아헌(亞獻) 사이에 읽혀진다. 소령원 제사의 진설, 의식의 절차 등은 《소령원지》에 상세하다. 소화(昭和)란 연호를 통해 1926년 이후 일제강점기에 필사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육상묘고유제문초 / 毓祥廟告由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1744년(영조 20) 숙빈묘를 소령묘(昭寧墓)로, 사당을 육상묘(毓祥廟)로 각각 승격하고 지낸 고유제의 축문 초고. 영조는 즉위 20년 후인 1744년 3월 7일, 영의정 이하 신료들에게 사친의 묘호와 묘호를 정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육신묘 / 六臣墓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사육신의 묘. 육신은 바로 참판 박팽년(朴彭年), 승지 성삼문(成三問), 교리 이개(李塏), 사예 유성원(柳誠源), 참판 하위지(河緯地)를 지칭한다. 노량진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육신 가운데 5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고 박, 유, 이,
윤각 / 尹慤 [역사/조선시대사]
1665(현종 6)∼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익상이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비변사낭관·도총부도사·초계군수 등을 역임하고, 전주영장을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1710년 해구의 발호가 심해지자 대신 이이명의
윤득우 / 尹得雨 [역사/조선시대사]
1719년(숙종 45)∼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윤경(潤卿),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1751년(영조 27)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1752년(영조 28)부터 세자시강원사서‧사헌부지평‧홍문관부교리 등을 지냈다. 1755년(영조 31) 유생들의 상소에 연명하
음양과 / 陰陽科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관상감의 천문·지리·역수·점산·측후·각루 등의 일을 맡는 기술직원을 뽑기 위해 시행했던 잡과 시험. 다른 잡과와 마찬가지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설행되었고, 초시와 복시만 실시되었다. 초시는 상식년 가을에 관상감에서 실시했고, 복시는 관상감이 예조와 함께 설행
의과 / 醫科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전의감·내의원·혜민서 소속의 의관을 뽑기 위하여 시행하였던 잡과시험. 다른 잡과와 마찬가지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설행되었고 초시와 복시만 실시되었다. 초시는 상식년 가을에 전의감에서 실시하였고, 복시는 전의감이 예조와 함께 설행하였는데, 그 시취액수는 초시에
의열소유영빈이씨치제문 / 義烈昭裕暎嬪李氏致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950년 9월 23일에 영친왕 이은(李垠)이 영빈이씨를 위해 치제를 올리려 했을 때 지어진 제문. 제문은 지어진 시점이 한국전쟁 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 한·미 연합군은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동월 24일에 서울 서쪽 안산(鞍山)을 점령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