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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예술·체육 > 무용
극장춤 / 劇場舞 [예술·체육/무용]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모양의 서양식 무대양식에서 추는 춤. 일반적으로 극장춤은 객석과 분리된 무대형태에서 추어지는 춤을 일컬으며, 서양식 무대양식에서 추어지는 춤 혹은 무대춤을 가리킨다. 1914년 2월 신창(信彰) 기생들이 단성사(團成社)에서, 그해 3월 신남
근대춤 / 近代舞 [예술·체육/무용]
갑오경장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의 근대 시기에 추어진 한국과 서양의 춤. 한국 근대춤은 한국 근대 시기의 춤으로, 조선과 대한제국까지 이어졌던 고유한 전통춤뿐만이 아니라, 개화와 더불어 서양에서 수입된 발레, 모던댄스, 교육무용, 사교춤, 서양 민속춤, 레뷰춤 등과
근천정 / 覲天庭 [예술·체육/무용]
조선 초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조선 초기에 당악정재의 양식을 도입하여 새로 창작한 춤에도 「금척 金尺」·「수보록 受寶籙」·「근천정」·「수명명 受明命」·「하황은 荷皇恩」·「하성명 賀聖明」·「성택 聖澤」의 일곱 가지가 있으며, 그 무보(舞譜)는 모두 『악
김동한 / 金東漢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무용학원인 조선예술학원을 설립한 무용가. 러시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1921년 해삼위학생음악단이 고국 방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년(同年) 김동한은 해삼위동포연예단을 이끌고 고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김막인 / 金漠人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현대무용부의 임원을 역임한 무용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모던댄스를 수학 후, 해방 후 서울에서 전위무용을 시도한 신흥무용가이다. 본명은 김해성(金海星)으로 부친이 목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시이미도리무용연구소에서 수학했고, 귀국 후 악극
김민자 / 金敏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최승희의 제자이며, 예그린악단의 안무가로 활동한 무용가. 1914년 서울 내수동에서 아버지 김영제(金永濟)와 어머니 유운자(柳雲子) 사이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우경(又璟), 민자는 예명이다. 14살 때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중
김보남 / 金寶男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아악수,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무용가.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3기생으로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였고, 후에 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雅樂師)가 되었다.춤에 소질이 있어 박성재(朴聖在)·김천흥(
김수악 / 金壽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읍 출생.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애호가에 한량이었고,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9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
김숙자 / 金淑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경기도 도당굿 도살풀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김숙자의 조부 김석창(金碩昌)은 경제(京制) 명창이었고, 부친 김덕순(金德順)은 판소리, 경기무악, 민속악의 재인으로 화성 재인청과 안성 신청에 속했으며,
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