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한상호 / 韓相浩 [역사/근대사]
18990-1921.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경성 출신. 일찍이 간도에서 성장하여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를 졸업한 뒤 와룡소학교(臥龍小學校)교원으로 봉직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간도에서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禎)·최이붕(崔以鵬) 등과 철혈광복단(鐵血光復
한석동 / 韓石東 [역사/근대사]
1893-193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석동(韓錫東)이다. 본적은 경기도 이천(利川)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권중효 등과 함께 사전 준비 작업을 하였다. 1919년 4월 2일 경기도 이천
한석영 / 韓晳瑛 [역사/근대사]
1897-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한석화 / 韓錫化 [역사/근대사]
1898-195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1919년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조천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3·1운동
한성수 / 韓聖洙 [역사/근대사]
1920-1945. 광복군. 일명 이상일(李相一)·한성수(韓成洙).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44년 3월 학도병으로 일본군병영을 탈출하여 중국 푸양(阜陽)에 주둔한 광복군에 입대한 열혈청년으로서 제3지대의 발전을 위해서 자진 푸양에 잔류한 기간간부의 한 사람이다. 중
한성옥 / 韓成玉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제주도 표선면(表善面) 성읍리(城邑里)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성산면(城山面) 온평리(溫平里)에서 마을 일을 보고 있을 때 성산포(城山浦)에서 일본의 선박이 침탈해오자, 주민들과 마찰이 자주 발생하였다. 1927년 5월 1
한성준 / 韓成俊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고수·민속무용가(1875∼1941).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중모리·진양조·엇모리·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명무로도 이름을 떨쳤다. 무용에도 뛰어나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학무·태평무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한성태 / 韓成泰 [예술·체육/국악]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한수동 / 韓壽同 [예술·체육/국악]
1895년∼1940년. 가야금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숙구(淑求)의 아들이다.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산조 명
한시대 / 韓始大 [역사/근대사]
미상∼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1902년(광무 6) 캘리포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위원장을 역임하며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 1937년 미주 지역 애국단 대표로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의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