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 > 선사시대사 총 38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역사 > 선사시대사
대구월성동주거지 / 大邱月城洞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유적은 대구 분지의 남쪽에 솟은 대덕산(大德山)에서 대략 서쪽으로 낙동강을 향해 뻗은 산괴가 끝나는 부위에 소재한 한 구릉의 서남 기슭에 있다. 유적의 남서쪽 선상지(扇狀地)에는 고인돌 떼가 분포하고 있다. 1
대구이천동지석묘군 / 大邱梨泉洞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옛 대봉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 1936년 일제 당시의 조사자에 의해 5개의 구(區)로 나뉘어 명명되었다. 각 구는 대략 3개씩의 지석묘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중 1936년에 이미 조사된 이천동 제4구 Ⅰ·Ⅲ지석묘
대구진천동입석 / 大邱辰泉洞立石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立石]. 선돌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크기는 길이 150㎝, 너비 110㎝, 높이 210㎝이다. 선돌 하부에 축조된 기단은 평면형태가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전체적인 규모는 길이 20∼25m, 너비 10∼12.5m 정도이다.
대구칠성동지석묘 / 大邱七星洞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제3호 고인돌을 중심으로 6기가 방사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고인돌들에는 후대인 1795년(정조 19)에서 1797년 사이에 경상감사로 재임중이던 이태영(李泰永)이 꿈속에서 북두칠성이 고인돌 자리에 떨어진
대구평리동유적 / 大邱坪里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유적. 1974년 8월 하순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기초를 파던 중 우연히 청동기와 철기유물이 발견되어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매장문화재로 신고되었다. 발견한 인부들의 말에 의하면 판석(板石)이나 목재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대덕내동리지석묘 / 大德內洞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저동의 충남방적주식회사 정문 옆에 있는 4기의 고인돌.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호. 원내동 지석묘군은 호남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대전쪽으로 2㎞ 정도 국도를 따라 오면 좌측 도로변에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표고 80m∼90m
대덕사성리지석묘 / 大德沙城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동구 사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1기만이 발견되었고, 1977년 대청댐 수몰지구 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금강의 작은 지류인 주안천(周岸川)이 흐르는 동면 지역은 대청댐 수몰지구 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이루는 곳이다.
대동상리유적 / 大同上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 상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분묘 유적. 첫 번째의 유물 발견 당시에는 표면에 성토(盛土) 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깎인 표토 아래 약 25㎝ 내외의 깊이에서 철갈래창[鐵戟]·철투겁창[鐵鉾] 등이 먼저 발견되었다. 확장하여 동서
대롱옥 / ─玉 [역사/선사시대사]
구멍을 뚫은 짧은 대롱모양의 구슬. 짧은 것은 1㎝ 이하에서 긴 것은 10㎝ 이상 되는 것이 있다. 구슬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생한 형식으로 주로 목걸이에 쓰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도 쓰였다. 대롱옥은 처
대전괴정동유적 / 大田槐亭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서구 괴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널무덤. 유물 중 청동기로는 한국식동검[細形銅劍]·거울[多鈕鏡]·동탁(銅鐸)·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가 있다. 토기로는 아가리[口緣部]가 밖으로 둥글게 말린 이른바 덧띠토기[粘土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