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일기에는 양반 남성의 일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세밀한 일상이 묘사되어 있어, 유학자들의 일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다. 이 일기의 국역을 통해 이해하기 쉬운 텍스트를 제공함으로써 문화콘텐츠 구축을 위한 기초가 될 것이다. ※자료문의 :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02-880-2035
이문건(1494~1567)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6세기에 양반 사대부가 남긴 일기로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이미 알려져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 두 일기보다 더 시기가 빠르고, 일기의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쓰였으...
국역 묵재일기 2 (1551년~1554년)
이문건(1494~1567)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6세기에 양반 사대부가 남긴 일기로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이미 알려져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 두 일기보다 더 시기가 빠르고, 일기의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쓰였으...
국역 묵재일기 3 (1555년~1558년)
이문건(1494~1567)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6세기에 양반 사대부가 남긴 일기로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이미 알려져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 두 일기보다 더 시기가 빠르고, 일기의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쓰였으...
국역 묵재일기 4 (1559년~1567년)
이문건(1494~1567)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6세기에 양반 사대부가 남긴 일기로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이미 알려져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 두 일기보다 더 시기가 빠르고, 일기의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쓰였으...
원문표점 묵재일기1
이문건(1494~1567)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6세기에 양반 사대부가 남긴 일기로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이미 알려져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 두 일기보다 더 시기가 빠르고, 일기의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쓰였으...
원문표점 묵재일기2
이문건(1494~1567)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6세기에 양반 사대부가 남긴 일기로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이미 알려져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 두 일기보다 더 시기가 빠르고, 일기의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쓰였으...
○휘(煇)와 함께 여막을 지켰다
1535년 11월 1일 무오, 흐리고 따뜻함.
가정(嘉靖) 14년(1535) 을미
11월 작은달 무자 일기
○휘(煇)와 함께 여막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서울에 머물렀다
1535년 11월 2일 기미, 맑고 따뜻함.
○서울에 머물렀다. 우선 관목(官木) 15필을 용산(龍山)으로 보냈다. 식후에 서소문 밖에 있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서울에 머물렀다
1535년 11월 3일 경신, 맑음.
○서울에 머물렀다. 아침 일찍 김숙손(金叔孫)의 집에 가서 만나보고 묘소를 옮길 날짜를 의논했다. 또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서울에 머물렀다
1535년 11월 4일 신유, 흐림.
○서울에 머물렀다. 수손(守孫)‧군만(君萬) 등으로 하여금 석회(石灰) 2바리를 실어 옮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