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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중추부사 / 領中樞府事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중추부에 두었던 정1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1466년(세조 12) 종래의 중추원을 중추부로 개편하면서 처음 두었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에 의한 관제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의 중추부는 형식상 서반의 최고관부로 편제되었을 뿐 일정한 소관사
영지 / 靈芝 [과학/식물]
다공균과에 속하는 적지(赤芝)와 자지(紫芝)의 자실체(子實體:버섯). 근래에는 약효가 우수하다고 하여 각처에서 인공재배를 하고 있어 널리 퍼지고 있다. 성분 중에는 수용성의 단백질을 비롯하여 알칼로이드와 다당류를 함유하고 있다. 동물실험의 결과를 보면 중추신경계통에 작
영지무 / 影池舞 [예술·체육/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6명이 영지(影池)를 가운데 두고 3명은 영지 앞에 3명은 영지 뒤에 서서, 서로 마주보면서 춘다. 영지의 그림은 순조 무자 『진작의궤 進爵儀軌』에 전하는데, 그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사방 6척 정도의 크기로 네모진
영진군 / 營鎭軍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지방의 요새지인 영·진을 지키던 군대. 조선 초기 ≪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시 외방의 군사체제로 육수군과 기선군이 있었다. 이 육수군에 들어가는 군대로는 번상숙위하는 시위패·영진군 등이 있다. 그러나 지방 수호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영진군이었다. 영진군은 13
영천 / 榮川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내사군(奈巳郡)이었는데, 신라의 파사이사금 때 신라 영토로 되어 군을 설치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내령군(奈靈郡)으로 고쳐 삭주(朔州) 소속의 군이 되었다. 940년(태조 23) 강주(剛州)로 고쳤으며 1018년(
영천곰굴 / 令泉―窟 [지리/자연지리]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영천리에 있는 석회동굴. 지질은 고생대의 대석회암통에 속한 영월층군(寧越層群)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 4, 5억년 이전에 생성된 것이다. 동굴이 있는 지역일대는 남한강의 지류인 매포천(梅浦川)과 안동천(安東川) 등이 개석하고 있으며 선사시
영천댐 / 永川─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와 노항리에 있는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의 용수댐. 높이 42m, 제방 길이 300m이며, 총저수용량은 9640만t이다. 1974년 10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해발고도 150m에 위치한다.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뒷산과
영천비음기 / 靈泉碑陰記 [문학/고전산문]
고전산문. 영천(靈泉)은 장릉(莊陵)의 제정(祭井)으로, 서영보(徐榮輔)의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3책에 《영천입석기(靈泉立石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1791년(정조 15) 찬술되었다.
영천서원 / 寧川書院 [교육/교육]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서원. 1619년(광해군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처순(安處順)·정환(丁煥)·정황(丁熿)·이대유(李大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6년(숙종 12)에 ‘영천(寧川)’이라고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영천어은동유적 / 永川漁隱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어은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분묘 유적. 출토유물 및 발견상태 등으로 미루어 움무덤[土壙墓]계통임이 확실하다. 유물은 한(漢)의 일광경(日光鏡)을 비롯해 방제경(倣製鏡), 팔찌, 호형(虎形)ㆍ마형(馬形)띠고리, 장식단추, 사슴머리[鹿頭],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