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6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 곽낙원 / 郭樂園 [역사/근대사]

    1859-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재령군(載寧郡)이다. 남편은 김순영(金淳永)이다.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가들과 항일단체들을 후원하였다. 1911년 7월 22일 아들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신민회(新民會) 활동으로 인하여 징역

  • 곽상훈 / 郭尙勳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96-1980). 호는 삼연(三然).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으며 관동대지진 때는 한국인 희생자의 명단을 입수, 한국인 학살사건의 진상기록을 수집해 그로 인해 상해로 망명생활을 했다. 귀국 후 일

  • 곽재구 / 郭在九 [역사/근대사]

    1889-1932년. 의병. 전라남도 나주 출신. 영암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심남일(沈南一)의진의 부장(部將)인 권택(權澤)의 부하로 호남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8년 12월 권성화(權聖化) 등과 그들의 의병활동을 일본관헌에게 밀고한 자를 나주군

  • 곽재기 / 郭在驥 [역사/근대사]

    1893-1952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경(敬). 충청북도 청주 출신. 지엽(芝燁)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 교사로 있었다. 1909년 청소년으로 조직한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의 당원으로 지하공작을 진행하였

  • 곽중규 / 郭重奎 [역사/근대사]

    1891-1950.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옥천 출신. 1919년 3월 고향인 옥천군 이원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전형무소에서 3개월간 복역하였다. 1921년 9월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1922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서로 취임하였

  • 곽한일 / 郭漢一 [역사/근대사]

    1869-1936년. 의병장. 자는 원우(元佑), 호는 장암(壯菴). 충청남도 아산 출신. 1896년 전기 의병항쟁기에 안성방면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본군과 진위대(鎭衛隊)가 합세하여 공격해옴으로써 아산·예산·청양 등지로 잠행하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데 힘썼다. 19

  • 구성문 / 具成文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담한 후, 강연상(姜鍊翔)·김동준(金東俊)·김찬(金燦)·서병호(徐丙鎬)·윤덕보(尹德甫)

  • 구수서 / 具守書 [역사/근대사]

    1894-194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창원(昌原)이다.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鎭田面: 현 마산시 진전면) 봉암리(鳳岩里)의 구장(區長)으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인근 진동면(鎭東面)에서 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변상태(卞

  • 구순암 / 具順岩 [역사/근대사]

    1907-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일본 이와떼현[岩手縣] 야하기촌[矢作村]이다. 1930년 초 일본노동조합전국연합회 젠꼬오[全協]에 가입한 후 각지에서 노동쟁의가 일어날 때마다 참여하였다. 1932년 이와떼현 야하기촌의

  • 구여순 / 具汝淳 [역사/근대사]

    1896-1946. 독립운동가. 호는 일정(一丁). 경상남도 의령 출신. 진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2월 28일 동생 은득(銀得)의 요청으로 3월 3일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하고 곧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2일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 최정학(崔正

페이지 / 68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