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경 / 洪承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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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성능 / 聖能
운초 / 雲樵
· 분야 : 종교·철학/유학
· 유형 : 인물/종교인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76-1947.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성능(聖能)이고, 호는 운초(雲樵)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고조는 홍낙질(洪樂質), 증조는 홍우영(洪遇榮), 조부는 홍범주(洪範周)이다. 부친 백남(白南) 홍우익(洪祐益)과 모친 우계이씨(羽溪李氏) 사이에서 3남 가운데 1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이려옥(李礪玉)이고, 동생은 홍승묵(洪承默)과 홍승덕(洪承惪)이다.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김우영(金禹泳)의 딸 함창김씨(咸昌金氏)이다. 어려서부터 자태가 옥같이 맑았으며, 말과 웃음이 적었다. 또래 아이들과 놀 때도 조용히 놀았다. 부모 곁에 있을 때는 말대꾸 하는 일이 없었고, 공부를 시작해서는 요령을 피우는 일이 없었다. 17세에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고 예를 갖추는 데 어긋남이 없자,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은 그를 매우 아끼고 중하게 대하여서 마치 주문공(朱文公)이 채원정(蔡元定)을 대하는 것처럼 하였다. 자라서도 말씨와 외모 등이 고풍스러웠으며, 후덕하고 과묵하였다. 또 교만하거나 자랑하는 사람들을 천하게 여겼다. 의롭지 못한 일은 하지 않았으며,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후에는 문을 닫아걸고 책 읽고 농사짓는 일만 하면서 근근이 집안 살림만을 유지하였다. 그는 효성과 공경을 근본으로 삼고 충성과 믿음을 실천하기를 가정과 고을에서 함께 한다면 세상이 올바르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7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유집 《운초유고(雲樵遺稿)》는 4권 1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고, 작품 대부분이 만시(輓詩)와 차운시(次韻詩) 등이다. 부록(附錄)에는 그의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 등이 실려 있다. 또 그가 편집한 《문혈록(抆血錄)》은 효자 홍중명(洪重明: 1654∼1725)의 실기로, 모친 봉양에 극진하였고 모친상을 당해 3년 상을 치른 효행으로 1724년(경종 4) 효정려(孝旌閭)를 받은 내용 등이 실려 있다. 홍중명의 후손인 그는 《문혈록》을 다시 정리하고 〈정려각중건상량문(旌閭閣重建上樑文)〉 등을 첨부하여 1926년에 재간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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