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 / 洪蘭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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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영후 / 永厚
· 분야 : 예술·체육/현대음악
· 유형 : 인물/예술인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7년∼1941년. 작곡가·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 본명은 영후(永厚)이다. 일제강점기에 널리 애창되었던 가곡 〈봉선화〉의 작곡자이기도 하며, 이밖에 다양한 문예활동을 통하여 일제강점기 하의 한국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경기도 화성군 남양읍 활초리에서 출생하여 5세 때 상경, 14세 되던 해인 1912년 YMCA 중학부에 들어가면서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13년 근대 이후에 설립된 최초의 전문음악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서양악과에 입학하여 1년 동안 김인식(金仁湜)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졸업 후 조선정악전습소의 교사로 활동하던 중, 1917년 동경음악학교(東京音樂學校)에 입학하여 음악·문학·미술 등 세가지 분야에 걸쳐 잡지 발간 등의 문예활동에 주력하였다. 재일유학생들이 중심이 된 항일운동에 가담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귀국한 뒤로는 《대한매일신보 大韓每日申報》 등의 기자로 활동하는 한편, 창작곡집 《처녀혼》을 출간하였다. 대표작 〈봉선화〉는 《처녀혼》의 첫머리에 〈애수 哀愁〉라는 곡명으로 발표된 것이다. 1922년 서울 연악회(硏樂會)를 창설하고 교육 및 음악보급에도 진력하였다. 1925년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 音樂界》를 창간하였으며, 1926년에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신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편, 1925년에 편찬한 《세계음악곡집》에 〈봉선화〉 등을 발표한 이래, 1929년 《조선음악백곡집》 상하권, 1933년 《조선가요창작곡집》 등을 세상에 내놓았고, 현제명(玄濟明)과 함께 합창곡 〈봄노래〉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주요작품으로는 바이올린독주곡 〈애수의 조선〉·〈동양풍의 무곡〉·〈로망스〉 등이 있다. 한편, 〈관현악곡 즉흥곡〉·〈관현반주 붙은 즉흥곡〉, 기타 《명작합창곡집》·《특선가요선집》 등을 출간하였다. 그의 작곡경향은 한국 선율의 요소를 반영시켜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하는 데서 발견된다. 이같은 그의 의도는 그가 남긴 평론에서도 잘 나타나며 바로 이런 점이 그를 1930년대 이후 한국 음악 창작의 패턴을 정립시킨 주요 작곡가로 평가하는 데 큰 몫을 한다. 한편, 1931년 바이올린 수업을 위해 도미하여 셔우드(Sherwood)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본격적인 독주회를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그뒤로는 연주활동 이외에 주로 경성보육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 가르쳤다. 1936년 경성방송 현악단의 지휘자, 빅터레코드의 양악부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이영세(李永世) 등과 난파트리오를 조직하여 실내악 활동에 관심을 가졌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평론집 《음악만필》 등을 통하여 음악문화의 계몽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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