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남 / 安昌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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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과학기술/과학기술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1-1930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서울 출신. 상준의 아들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기술을 배운 뒤 동경 오쿠리비행학교(小栗飛行學校)에 입학, 3개월 만에 3등비행사의 면허를 따냄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가 되었다. 1921년 6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민간항공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여 무시험으로 1등비행사 면허를 따내고, 일본의 동경과 대판간의 우편비행에 성공하여 단기간에 비행사로서 급성장하였다.
1922년 12월 10일 동아일보사 초청 ‘고국방문대비행’이 열렸는데, 서울 여의도에 전국에서 모여든 5만여명의 대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행기 금강호(金剛號)를 타고 서울 장안을 일순하고 여의도 상공에서 고등비행의 묘기를 선사하였다.
금강호는 단발쌍엽(單發雙葉)의 1인승으로 일본 오쿠리비행학교 소속의 영국제 비행기였다. 고국에서는 그에게 전용기를 마련해주고자 박영효(朴泳孝)·권동진(權東鎭) 등 47명의 유지들이 후원회를 조직하고 모금운동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고국방문비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1923년 9월의 간토대지진(關東大地震)때 피살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뒤에 중국 상해(上海)로 탈출하여 산시성(山西省) 옌시산(閻錫山)군벌 막하에서 비행학교 교관으로 있다가 비행중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