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 / 權基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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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3-1988.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의 부인이다. 1919년 평양 숭의학교(崇義學校) 재학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3주일 동안 구류되었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원인 임득삼(林得三)·김정직(金鼎稷)·김순일(金淳一)·김재덕(金在德) 등과 군자금을 모금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채를 판매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는 등 독립운동 활동을 계속하다가 다시 붙잡혀, 소위 제령위반(制令違反)이라는 죄목으로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20년 8월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하고 비밀공작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에 발각되자 그해 목선을 타고 상해(上海)로 탈출하였다. 상해에 도착한 뒤 이승만(李承晩)·안창호(安昌浩) 등을 만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1923년 윈난육군항공학교(雲南陸軍航空學校) 제1기생으로 입학하였다.
1925년 졸업하여 중국군 펑위샹(馮玉祥) 휘하의 공군에서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복무하였다. 이후 1927년 장개석(蔣介石)이 북벌(北伐)할 때 동로항공사령부(東路航空司令部)에 최용덕(崔用德)과 함께 가담하는 등 10여년 동안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였다.
1928년 5월 난징(南京)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충칭(重慶)에 있는 국민 정부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김순애(金淳愛)·방순이(方順伊)·최선엽(崔善燁)·최애림(崔愛林)·최형록(崔亨祿) 등과 함께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산하의 한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으며, 사교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후 1949년 귀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