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태 / 韓成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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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예술·체육/국악
· 유형 : 인물/예술인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동안의 수련 끝에 기량이 완숙해져 소년 명창으로 명망이 높았다. 1907년(융희 1) 18세 때 서편제(西便制)의 창법을 이은 김창환(金昌煥)의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하여 공연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판소리 공연은 인가가 있었으나, 가야금산조와 병창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이후 협률사에서 나와 전라남도 화순(和順) 만연사(萬淵寺)에 들어가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다시 협률사로 보내어 김채만(金采萬)에게 수학하게 하였다. 김채만은 서편제(西便制)를 가장 서편제답게 부르는 명창으로 평가 받던 인물이었다. 4년 동안 김채만의 지도 아래에서, 기량이 더욱 완숙해져 속골의 명창 박화섭(朴化燮)과 쌍벽을 이루었다. 1920년에 함흥의 기녀 권번(券番)을 거쳐 원산·전주·이리·군산·목포·광주 지역 권번의 소리 선생으로 전전하다 서울의 권번으로 옮겨 소리 선생을 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31년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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