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봉 / 崔汝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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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최여봉 / 崔如鳳
최해봉 / 崔海鳳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0-197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여봉(崔如鳳)·최해봉(崔海鳳)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김해(金海)이다. 1926년 6월 김행청년회 발행의 벽신문 《청뢰(晴雷)》의 편집위원, 같은 해 12월 김해청년회 야학부위원직, 1927년 7월 김해청년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7년 9월 김해청년회 창립대회 때 작성한 강령과 건의안 문구가 문제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1월 부산지방법원에서 20원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경남청년연맹 집행위원·김해청년동맹 집행위원장, 1930년 반일통일전선조직인 신간회(新幹會) 김해지회위원·김해농민연맹 검사위원, 1931년 경남적색농민조합동부위원회(慶南赤色農民組合東部委員會) 책임비서 등을 역임하며 사회주의사상 전파와 동지 규합 및 항일사상 고취 등에 힘쓰던 중, 1932년 메이데이 노동절 직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3년 2월 부산지방법원에서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후 1935년 9월 출감하였다. 1936년 2월부터 해방 때까지 동아일보 김해지국을 경영하였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김해지부 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가 개최되자 김해 대표로서 참석하였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지부 결성 준비위원에 선임되었다. 2009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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