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전 / 文秉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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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8-197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풍암(楓庵) 문위세(文緯世)의 종손으로, 1898년 3월 18일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유치면(有治面) 늑룡리(勒龍里)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나 남달리 의로움이 강하고 과묵했다. 30여 세 되던 즈음 일제의 탄압이 가혹해지고, 곡물의 공출량도 많아지자 일본 경찰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항상 감시를 받는 몸이 되었다. 1927년 2월 늑룡리 앞 개천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일본 경찰이 그를 불러 세워, 공출에 협조하라고 협박하였다. 이에 격분하여 왜경 2명을 개울에 쳐 넣고 두들긴 뒤, 만주(滿洲)로 도망하여 철기 이범석 장군의 독립 군대에 몸을 의탁하였다. 수 년간 여러 전투에 참가했으며,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해방 이후 고향 장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1965년 이범석 장군이 탐진강변에서 그를 만나 상경할 것을 권유하지만, 고향에서 여생을 마칠 것을 고집하였으며, 1971년 8월 14일 세상을 하직하였다. 후손들이 지금까지 유치면 늑룡리에 일가를 세우고 살고 있으나, 독립운동가의 유족으로서의 특혜는 받지 못하고 있다. 묘소는 탐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늑룡리 후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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