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용 / 金時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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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6-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제주도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입학하였다. 1928년 재학 중 항일학생단체인 재일조선청년동맹(在日朝鮮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1929년 재일조선청년동맹에서 발행한 《조선청년(朝鮮靑年)》에 기사를 게재하여, 일제의 ‘치안유지법’의 허위성과 독립운동 탄압 정책 등을 비판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8월 18일 신문지법 위반 등으로 벌금형에 처해졌다가 그 후 병을 얻자 귀국하였다. 1931년 5월 부산 일대에서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조선방적 등의 총파업을 선도하였으며, 비밀결사단체인 부산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1년 11월 1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에 처해져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내려가서 항일 활동을 지속하였다. 김시범(金時範)·김평원(金平遠)·안세훈(安世勳) 등과 함께 결의하여 소비조합(消費組合)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1937년 8월 농민조합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각종 강습회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와 일제의 강압적인 각종 부담금 및 군수물자공출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2년 8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에 금고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극심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1995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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