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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서방 / 書房 [정치·법제/국방]
고려 무신정권기에 설치된 숙위기관. 1227년(고종 14) 최우에 의해 설치되었다. 설치목적은 문사를 우대하는 뜻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고사에 밝고 식견이 높은 문사를 고문에 등용함으로써 정치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결국, 서방의 설치는 최씨정권의 강화책에 있었던 것이
서사 / 書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서리의 차위직. 고려 태조 때부터 있던 실무·행정 담당의 말단 이속이었으며, 국자감에 2인, 예빈성에 8인, 위위시와 사재시에 각 6인, 대복시에 4인, 대부시에 12인이 배속되었다.한편, 서사는 입사직으로 998년(목종 1) 개정전시과에 제17과로 해당되어
서수 / 書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서리직. 고려시대에 각 관청에 소속된 이속직은 크게 서리직과 잡직 계통의 잡류로 나누고, 서리직은 입사직과 미입사직으로 구분된다. 그 중 서수는 장고 등과 함께 미입사직에 해당된다. 서수는 중서문하성에 26인, 예문관에 1인, 비서성에 15인, 어서원에 2
서신일 / 徐神逸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 이천 서씨의 시조. 아들로는 광종때 내의령을 지낸 필이 있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해하면서 “사슴은 내 아들인데 공에게 힘입어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리다.”라고 말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
서예 / 書藝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서리직. 중서문하성에 2인, 춘추관에 4인, 동궁에 2인, 비서성에 18인을 두었으며 태사서예도 있었다. 서예는 입사직으로서 동정직이 설정되어 있었다. 한편, 중서서예·비서서예·사관서예·태사서예는 1076년(문종 30)의 전시과에서 제16과에 해당되어 전지
서왕가 / 西往歌 [문학/고전시가]
고려 말기에 지어진 불교가사.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지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 견해를 인정하면 최초의 가사 작품이 되며, 가사 장르 형성 초기의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그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 크게 6문단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요지는
서운관 / 書雲觀 [과학기술/과학기술]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기상관측 등을 관장하던 관서. 천변지이를 관측, 기록하고, 역서를 편찬하며, 절기와 날씨를 측정하고, 시간을 관장하던 곳이다. 고려시대는 태복감(太卜監)·사천대(司天臺)·사천감(司天監)·관후서(觀候署) 등의 명칭으로 바뀌어오다가 1308년(충
서유기 / 西遊記 [문학/고전산문]
명나라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서유기(西遊記)』의 번역본. 명나라 소설 『서유기』(100회)를 번역한 책이다. 오승은(1500∼1582)은 당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송의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등의 고사와 민간에 전해 오던 각종 설화, 전설들을
서적점 / 書籍店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문종 때 서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기관. 소속관원으로 녹사 2명과 이속으로 기사 2명, 기관 2명, 서자 2명을 두었다. 1392년(공양왕 4)의 기사에서 주자와 서적의 인쇄를 관장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그 이전에도 단순히 인쇄된 서적뿐만 아니라 주자
서적포 / 書籍鋪 [언론·출판]
고려 숙종 때 국자감에 두었던 출판부. 축문과 경적을 맡아보던 비서성에 보관되어 있던 책판이 쌓이고 훼손된 것이 많아지자, 1101년(숙종 5) 3월 서적포를 설치하여 모든 책판을 이 곳에 옮겨 인쇄, 보급하게 하였다. 그 서적간행은 비서성의 관장하에 이루어졌고,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