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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삼국시대
직산 / 稷山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천안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수도 위례성(慰禮城)이라는 설이 있는데,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졸본부여(卒本扶餘)로부터 한반도에 남하하여 이곳에서 개국하고 도읍하였다고 한다. 뒤에 고구려가 취해서 사산현(蛇山縣)으로 고쳤고, 757년(경덕왕 16)에는 그대로
차 / 茶 [생활/식생활]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만든 음료. 차는 처음에는 음료수의 일종이거나 약용으로 쓰였지만 차차 기호식품화되면서 취미생활과 연결되고, 다시 일상생활의 도(道)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다도(茶道)로까지 발전시켰다. 차에는 작설차·납전차·납후차·우전차·전차·말차(抹茶) 등
차자표기법 / 借字表記法 [언어/언어/문자]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한자차용표기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전에 향찰(鄕札)·이두(吏讀)·구결(口訣)·고유명사표기라고 구분하여 오던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은 한자의 음과 훈 중 어느 것을 차용하느냐에 따라 ‘음’과 ‘훈’으로
참동계 / 參同契 [종교·철학/도교]
중국 후한 때 인물인 위백양이 저술한 도교의 경전. 연단법을 <주역>의 역리에 참통계합시켜 설명한 책이다. 태식과 같은 호흡조절을 통하여 불로장생을 가능하게 한다는 내단설과 단약의 연제를 역의 원리에 따라 전개하는 외단설을 밝혔다. 우리나라에 <참동계>가 전해진 것은
처용무 / 處容舞 [예술·체육/무용]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비롯된 가면무.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고려사』 악지(樂志)에는 처용무가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고려사』 충혜왕조와 신우조(辛禑條)에는 처용희(處容戱)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한다.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권1에는
천사옥대설화 / 天賜玉帶說話 [문학/구비문학]
신라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은 옥대에 관한 설화.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 천사옥대(天賜玉帶)에 수록되어 있다. 일연(一然)의 찬문, “하늘이 주신 긴 옥대는 임금의 곤의(袞衣)에 알맞았네. 우리 임금 이로부터 몸 더욱 중하니 다음에는 쇠로써 섬돌을 지으려 하
첨성대 / 瞻星臺 [과학/과학기술]
별을 보기 위하여 높이 쌓은 대. 현존하는 첨성대 중 대표적인 것은 신라시대 경주에 있었던 것이다. 별을 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국가의 길흉을 점치기 위하여 별이 나타내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법(曆法)을 만들거나 그 오차를
청개정국호겸상왕호서 / 請改正國號兼上王號書 [문학/한문학]
신라 지증왕 때 국호와 왕호를 정해 올린 글. 이 글은 처음부터 독립된 문장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고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지증마립간(知證麻立干) 4년조의 기록을 한말의 장지연(張志淵)이 『대동문수(大東文粹)』를 편찬할 때 내용의 일부를 개작하여 한 편의
최치원 / 崔致遠 [종교·철학/유학]
신라 말의 유학자. 869년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거기에서 과거급제했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유명한 격문을 지었다. 885년 귀국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만년에는 명산대천을 찾아 두루 다녔다. 유, 불, 선 3교를 조화시키고 융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유교의 '인
최치원설화 / 崔致遠說話 [문학/구비문학]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인 최치원에 관한 설화.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의 일화에 관련된 문헌설화이다. 한 편의 설화이기는 하나, 내용 구성면에서 다분히 소설적 면모를 띠고 있어 소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설화는 원래 『수이전(殊異傳)』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성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