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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방물이준사은표 / 賀謝方物移准謝恩表 [정치·법제]
1882년 청이 조선에서 진하 · 하사하는 방물을 받지 않고 다음 번 연공 방물로 충당케 하는 조치를 내리자 이를 사은하기 위해 조선에서 청에 보낸 사은표. 지제교 이최영(李㝡榮)이 지었다.
하사방물이준사은표수미 / 賀謝方物移准謝恩表首尾 [정치·법제]
1882년 3월 29일 진하사은 겸 연공사신 일행의 귀국 보고를 통해 청이 진하·사은하는 방물을 받지 않고 다음 번 연공 방물로 충당케 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종이 청 황제에게 사은한 표문의 수미. 표문은 제술관 홍우일(洪祐逸)이 지었다.
학부직원록 / 學部職員錄 [정치·법제]
대한제국 때 학부 소속 직원 명단. 판상구에 '학부'라고 인쇄되었고, 주색 목판인찰공책지를 사용하여 필사하였다. 제1면 좌측 상단에 '장서각인'이 날인되어 있다. 주로 일본인으로 학부에 근무하거나 관립사범학교, 고등학교, 일어학교, 보통학교 교사 명단이다.
한구자의 유래초기 / 韓構字의 由來抄記 [정치·법제]
한구자(韓構字)가 만들어진 경위를 초록한 문서. 이왕직(李王職)에서 작성한 문서. 주색의 이왕직찬집용지를 사용하였다. 한구가 죽고 1782년(정조 6)에 평안도관찰사 서호수(徐浩修)가 왕명을 받들어 그의 글씨를 자본으로 삼아 평양감영에서 8만 자의 활자를 만들어 '한구
한성북부호적대장 / 漢城北部戶籍大帳 [사회/촌락]
1663년(현종 4)에 조사, 작성된 한성부 북부관 내의 호적책. 1책. 완본(完本)으로 필사본. 책의 크기는 세로 43㎝, 가로 42.5㎝이며, 분량은 150매이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 일반의 기재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계(契)별로 오가작통(五家作統)하지 않고 있
한성순보 / 漢城旬報 [언론·출판/언론·방송]
1883년(고종 20)에 창간되었던 순간(旬刊) 신문.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1883년 10월 1일(음력) 서울 저동(苧洞)의 통리아문(統理衙門) 박문국(博文局)에서 발행한 월 3회 발간된 순보로, 매월 1일자로 간행되었다.
한억길승급문서 / 韓億吉陞級文書 [정치·법제]
1908년(융희 2) 3월 20일. 정3품 통정대부 한억길(韓億吉)을 종2품 가선대부에 가자하는 문서. 1882년(고종 19) 6월 일본식 군제 도입과 민씨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1908년(순종 1) 황제에 등극한 순종은 조령을 내려 임오군란때 공로
한영수임명문서 / 韓永洙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2월 8일. 한영수(韓永洙)를 유강원(裕康園) 참봉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유강원은 조선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명효황후의 원이다. 참봉은 조선시대의 원, 능전을 비롯한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최말단직의 품관이다.
한정기임명문서 / 韓鼎基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1월 11일. 6품 승훈랑 한정기(韓鼎基)를 순창원 참봉 판임관 8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순창원은 조선 13대왕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와 세자빈 공회빈 윤씨의 합장묘이다. 원래는 순회묘였으나, 그 뒤 순회원으로 이름을 변경, 1870년(고종 7)
한좌시집 / 漢左詩集 [생활]
성책고문서(成冊古文書) 작성연대 미상. 작성자 미상이다. 크기는 28.9 × 18.3cm이다. 내용은 7언 율시, 혹은 고시(古詩)가 수록되어 있다. 종이를 오려내고 수정한 흔적이 있으며, 간혹 본문에 빗점을 찍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