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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삼국시대
소문국 / 召文國 [지리/인문지리]
초기국가시대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었던 소국.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2년 (185)조에는 “파진찬(波珍飡) 구도(仇道)와 일길찬(一吉飡)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아 소문국을 공벌(攻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
소산 / 蘇山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청도지역의 옛 지명. 본래 삼한시대에는 이서국(伊西國)이었으나, 42년(유리왕 19)에 유리왕의 공략을 받아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처음에는 솔이산현(率伊山縣, 또는 率已山縣)이었으나 748년(경덕왕 7)에 구도현(仇刀縣)과 합쳐 대성군(大城郡)으로 하였다.
소석삭국 / 小石索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삼한의 소국이 열거되어 있다. 여기에는 또 대석삭국(大石索國)이 보이는데, 이는 글자의 뜻으로 보아 ‘석삭국(石索國)’을 ‘소(小)’와 ‘대(大)’로 구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국여지승람
소작제도 / 小作制度 [사회/사회구조]
토지소유자가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경작시키는 대가로 지대(地代)를 받는 경작제도. 우리 나라의 소작제도는 멀리 삼국시대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삼국시대에도 토지매매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전(賜田:임금이 내려준 밭)이나 사원전(寺院田) 또
속함 / 速含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속함군(速含郡, 또는 含城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천령군(天嶺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의 행정상으로는 강주(康州) 관할이었으며, 이안(利安)ㆍ운봉(雲峯)은 천령군의 영현이었다. 당시의 군 치소(治所)는 현재
송동자하산 / 送童子下山 [문학/한문학]
신라 왕자 김지장(金地藏)의 시. 『전당시 全唐詩』 권808에 수록되어 있다. 김지장이 당나라 숙종(肅宗) 때에 중국 구화산(九華山)에 은거하여 지은 시로,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다. 시의 내용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다고 자주 눈물 흘릴 것 있느냐!
송림 / 松林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장단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약지두치현(若只頭耻縣, 또는 之蟾朔縣)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여웅(如熊)으로 고쳐 송악군(松岳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 송림으로 고쳤고, 광종 때 이곳에 불일사(佛日寺)를 창건하게 되
송변 / 宋邊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거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송변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남수(南垂)로 고쳐 거제현의 영현으로 하였다. 1271년(원종 12) 왜구에게 이곳을 점령당하자 주민을 거창군 가조현(加祚縣)으로 옮겨 오랫동안 주민이 살지 않았으나, 조선 세종 때 주민의 거주를
송산 / 松山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대동여지도』에 실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덕원면 송상리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신라의 부사달현(夫斯達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송산으로 고쳐 삭주 관할의 정천군(井泉郡)의 속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는 이곳에 용진진(龍津鎭)을 설
송산성 / 松山城 [지리/인문지리]
삼국시대의 성.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 기록에 따르면, 607년 5월 고구려가 송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했고, 이어 석두성(石頭城)을 습격하여 남녀 3천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고구려가 송산성 공격 실패후 곧바로 석두성 습격을 감행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