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문헌 > 문서 800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문헌 > 문서
  • 전시조서순부사은예부자 / 奠諡詔書順付謝恩禮部咨 [정치·법제]

    1882년 청에서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렸음을 알리는 조서를 조선의 사신을 통해 보내자, 고종이 사절을 통해 사은표를 청 황제에게 전달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청 예부에 보낸 자문. 자문은 제술관 홍우일(洪祐逸)이 지었다. 자문 뒤로는 황세저포 30필로부터 백면지 2,0

  • 전시조서순부사은표수미 / 奠諡詔書順付謝恩表首尾 [정치·법제]

    1882년 조선 사신 오경연(吳慶然)이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렸음을 알리는 청 황제의 조서를 1881년 12월 28일 갖고 오자 고종이 사절을 보내 청 황제에게 사은한 표문의 수미. 표문은 제술관 홍우일(洪祐逸)이 지었다. '조서순부사은(詔書順付謝恩)'이란 조서에 대한

  • 전시조서순부사은황태후장 / 奠諡詔書順付謝恩皇太后狀 [정치·법제]

    1882년 청 황제가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렸음을 알리는 조서를 조선의 사신을 통해 보내자, 고종이 사절을 통해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에게 사은하기 위해 보낸 방물장. 홍세저포 10필로부터 잡채화석 10장에 이르기까지 총 5종의 진헌예물 목록이 적혀 있다.

  • 전시조서순부사은황태후장예부자 / 奠諡詔書順付謝恩皇太后狀禮部咨 [정치·법제]

    1882년 청에서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렸음을 알리는 조서를 조선의 사신을 통해 보내자, 고종이 사절을 통해 사은 방물장을 자희황태후에게 전달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청 예부에 보낸 자문. 자문 뒤로는 홍세저포 10필로부터 잡채화석 10장에 이르기까지 총 5종의 진헌예물

  • 전언엄씨교지 / 典言嚴氏敎旨 [정치·법제]

    1868년(고종 5) 12월. 고종이 전언인 엄씨를 상침(尙寢)으로 삼는 교지. 전언은 상궁의 명을 받아서 왕명을 전달, 보고하는 일을 담당한 내명부의 종7품 벼슬이다. 상침은 내명부 정6품으로 평소 왕을 알현하거나 왕이 입고 먹는 일의 차서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 정2품배종무관장조동윤상언 / 正二品陪從武官長趙東潤上言 [정치·법제]

    1905년(광무 6) 6월 조동윤(趙東潤)이 고종에게 보름날 두 혼정에 올린 제전에 참석하지 못한 데 대해 무거운 처벌을 다시 내려 주기를 청한 상언. 전자는 헌종의 계비인 명헌태후 홍씨의 혼전이고, 후자는 순종의 황태자 때의 비인 순명비 민씨의 혼전이다.

  • 정빈이씨교지 / 靖嬪李氏敎旨 [정치·법제/법제·행정]

    1725년(영조 1) 2월 27일에 소원이씨(昭媛李氏)를 정빈(靖嬪)으로 추증하는 교지. ≪영조실록≫에 따르면 이보다 이틀 전인 2월 25일에 정빈 소생의 아들(孝章世子)이 왕세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후궁 최고의 품계인 빈으로 추증되었다고 한다. 이 교지들에는 [시명

  • 정사책 / 政事冊 [정치·법제]

    1839년(헌종 5) 11월 15일부터 1841년 8월 21일의 각종 망단자를 비롯해 인사 기록을 모은 정사책. 망단자가 수록된 경우에는 결정된 인물에게 낙점(0) 표시가 있다. 선혜청 당상을 비롯해 이조판서 등 다양한 관원을 차출한 기록이며, 1840년 9월 10일에

  • 정성왕후홍릉지문초 / 貞聖王后弘陵誌文草 [역사/조선시대사]

    1757년(영조 33) 봄에 사도세자가 돌아가신 정성왕후를 위해 지은 묘지문의 초고. 단 1장의 종이에 행초로 글을 썼고 교정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글은 장헌세자의 문집 《능허관만고》권7에 실린 <정성왕후홍릉지>의 앞부분과 거의 동일하므로, 홍릉의 지문의 초고

  • 정숙조시장 / 鄭䎘朝諡狀 [정치·법제]

    조선 말기의 문신 정숙조(鄭䎘朝)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94년(고종 31) 이후에 남정철(南廷哲)이 지어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그의 외손 윤병호(尹炳皓)의 요청으로 홍문관학사 남정철이 지은 것이다.

페이지 / 80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