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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삼국시대
  • 색동옷 [생활/의생활]

    옷소매의 동을 여러 가지 빛깔의 천으로 연결하여 만든 옷. 색동옷은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졌으며, 여인들이 비단 조각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이어서 만든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 기원은 훨씬 이전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색동옷은 주로 돌부터 6, 7세까지

  • 생서랑 / 生西郎 [지리/인문지리]

    울산광역시 울주 지역의 옛 지명. 경덕왕 때 동안군(東安郡)으로 고쳐 경주에 합쳐졌다고 하며, 그 위치는 조선시대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의 서생포(西生浦) 부근이 바르다. 이는 동안군의 영현이었던 우풍현(虞風縣)이 언양(彦陽) 남쪽에 있어 경주와 합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생초진 / 生草津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백제 때의 나루터[津]. 생초의 지명은 『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나온다. 632년(무왕 33) 여름 왕이 생초원(生草原)에서 사냥을 하였다는 기록과 659년(의자왕 19) 8월 생초진에

  • 서곡 / 瑞谷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안변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 때의 경곡현(𢈴谷縣, 또는 首乙呑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서곡으로 이름을 바꾸어 삭정군(朔庭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 지명을 크게 바꾸고 정비할 무렵에도 그대로 서곡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도 같은 이름으로

  • 서기체이두 / 誓記體吏讀 [언어/언어/문자]

    이두를 향찰, 이두, 구결, 고유명사 표기 등 모든 차자표기를 대표하는 말로 볼 때, 한자의 실사만을 우리말 어순으로 배열한 이두를 이르는 말. 이두 발달 단계의 초기에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서와 같이 한자의 실사만을 우리말의 어순으로 배열한 표기 방법이 있었다.

  • 서동요 / 薯童謠 [문학/고전시가]

    신라 진평왕 때 백제 무왕이 지었다는 향가. 4구체. 이 노래는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무왕(武王)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한다. 이 설화에 의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

  • 서림 / 西林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설림군(舌林郡)이었는데, 신라시대에 설리정(舌利停)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서림군으로 바꾸어 남포(藍浦)와 비인(庇仁)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1018년(현종 9) 가림현(嘉林縣)에

  • 서안평 / 西安平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에서 압록강 맞은편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시대의 지명. 이 지역은 요동지역과 평양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상의 요지였다. 만약, 이곳을 고구려가 장악하면, 낙랑군과 대방군을 고립시킬 수 있다. 그러한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이곳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 서옥 / 壻屋 [사회/가족]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딸이 시집으로 옮겨갈 때까지 사위가 머물게 하는 집. 서옥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서이다. 동이전의 고구려조에 “처음 말로써 혼인을 정하고 다음에 여자의 집 대옥(大屋) 뒤에 소옥(小屋)을 지어 서

  • 서호 / 西湖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마포에서 서강에 이르는 15리 지역에 대한 조선시대의 옛 지명.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 번창했던 어항이며 물자를 육지로 실어내리는 포구였다. 행정상으로는 한성부(漢城府)의 성저십리(城底十里)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한성부 관할하에 들었다. 이 지역에 경창(京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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