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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도총도감 / 都摠都監 [정치·법제/국방]
고려시대 병력동원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고려 말기 정규병력만으로는 극렬해진 왜구의 침입과 노략질에 대처할 수 없게 되자, 1363년(공민왕 22) 개경5부의 인민으로 구성된 방리군을 조직하여 왜구의 침략에 대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대호와 중호의 경우는 5호,
도총섭 / 都摠攝 [정치·법제/법제·행정]
나라에서 내렸던 승려에 대한 직책 중 최고의 승직. 왕사 나옹이 선교도총섭의 직명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직명이 널리 보편화된 것은 선조 때부터이다. 이 승직은 국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었던 것으로 조정에서 직명을 내리는 것이 상례
도총제사 / 都摠制使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삼군도총제부의 최고지휘관. 삼군도총제부는 1391년(공양왕 3)에 이성계가 당시 중앙 및 지방의 여러 원수에게 분할되어 있던 병권을 통합하여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종래의 전투군 편제인 오군에서 전군과 후군을 없애고 삼군으로 편성한 것이다. 이성계가 초대 도
도통사 / 都統使 [정치·법제/국방]
고려 후기 출정군의 최고사령관. 1360년(공민왕 9) 왜구가 대규모로 침입하자 좌정승 유탁을 경기병마도통사로 임명하여 동강 및 서강의 병마사들을 지휘토록 한 것이 최초의 출현이다. 지휘체계의 제도 정비는 1369년 북원과의 외교를 단절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인
도평의사사 / 都評議使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국가의 최고 정무기관. 도병마사는 중서문하성과 중추원의 양부에서 임명된 판사와 사·부사·판관으로 구성되어 양계의 국방·군사 문제만을 논의하던 임시회의기관이었다. 도평의사사는 중앙의 여러 관청을 총령하고, 지방의 제도안렴사(諸道按廉使)에게 공문을 보내며, 또
도항사 / 都航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전기 수군을 관장하던 관서. 918년(태조 1)에 한찬 벼슬에 있던 귀평이 도항사령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태봉 때 설치된 기구를 이어받은 것 같다. 그 임무는 대체로 수군을 관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도호부 / 都護府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구. 대도호부와 도호부의 두 가지가 있다. 도호부는 고려의 제도를 이어온 지방관의 명호로, 태종(太宗) 6년에 지방행정체계가 정비되면서 대도호부(大都護府)·목관(牧官)은 정3품으로 도호부(都護府)는 종3품으로 정해져서, 도호부(都護府)는 목(
독권관 / 讀卷官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과거시험을 담당한 고시관. 고려 공민왕 때부터 개혁된 과거에서 왕이 최종고시를 주관함으로써 전시(殿試)가 강화되었다. 독권관은 전시에서 다수화된 고시관의 하나로서 응시자가 제출한 답안지를 읽고 그 내용이 잘 되었는가를 왕 앞에서 설명하는 직책을 맡았다.
독로올 / 禿魯兀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단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여진족의 미림금촌(美林金村)이었는데, 1107년(예종 2) 이곳을 차지하여 성을 쌓고 복주(福州)라 하였다. 그 뒤 여진족에게 빼앗겼다가 고종 때 수복하였으나 원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독로올이라 불리었다. 공민왕 때 고려의 영토가
독치 / 纛赤 [정치·법제/국방]
고려 말 군중의 독기(대장 앞에 세우는 기)를 관리하던 관직. 한자어로는 ‘독적(纛赤)’으로 표기한다. 충선왕 때 대청관을 두고 종9품의 판관으로 하여금 독기를 관리하게 하였다가, 공민왕 때 홍건적 격퇴에 앞서 대독을 만들면서 이 관직을 신설하였다. 이후 정안마다 서